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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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2.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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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남명선생도 시인이었다, 등불 아래 있었던 사람들(2)
-고 김충열 교수와 조옥환 사장과 그 주변
김충열(1921- 2008) 교수(전고려대 철학과)는 한국의 2세대 동양철학 연구자 그룹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6·25 피난중 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근무중 군사정보학교 3기생으로 중국어반에 입교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후 대만 국비유학생으로 유학하여 대만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이수한다. 귀국한 뒤 한국의 중국철학 분야와 한국철학 분야 연구를 이끌어온 연구가이다. 이번 출간된 전집은 사후 10년 만에 나와 그의 선배 유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성사된 것이다.

『중천김충열전집』 전15권은 중국철학, 유가철학, 도가철학, 한국유학, 중천한시, 중천묵향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한문학 전반에 긍하고 있다. 특히 한시와 서예를 겸하여 도학에서 시서적 정서를 소홀히 하지 않는 데서 오는 논리와 감성의 통합적 보폭을 보이는 학자로 주목이 된다.

김충열 교수는 남명의 시 「題德山溪亭柱」 - “저 천석들이 종을 보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아 어찌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해 화답시(次韻詩)를 쓴 바 있다.

“육중하고 육중한 저 천석들이 종이/ 땅에 떨어져 오래도록 소리가 없네/ 누가 다시 하늘 높이 매달고 서서/ 세상 깨우는 소리 울려 퍼지게 할 거나?”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남명 선생이 사후에 잊혀지고 외면당하며 저술이 불비한 학자로 오히려 능멸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김교수는 그 사정을 절절히 느끼며 온갖 노력을 다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세상 널리 펴는 데 평생을 두고 실천해 온 것이다.

전집 10권 〈책을 펴내며〉의 「남명 조식의 학문, 사상, 정신 연구 선양」은 그가 걸어온 남명학 선양의 40여년에 걸치는 행보의 기록이다. 이 글은 그가 근무처가 아닌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의 「한국철학사 강의」를 하게 된 경위, 그 속에서의 ‘남명학’분야에 대한 확충의 전말, 그가 정도전과 남명의 사상을 특별히 애정으로 기록하게 되는 이유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필자가 김충열 교수의 이 글에서 필자가 근무한 경상국립대 시절 경남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초창기 (1988년10월 18일) ‘남명학 국제학술회의’(후술하고자 함)를 개최한 일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했고 그 두 번째는 김교수와 덕산, 남명학연구원과 조옥환 사장과의 우정이 소상히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했다. 주목한 것이라기보다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남명학 연구 내지 보편화 운동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 무엇보다 먼저 전집15 「간행사/ 한국 지성사의 꺼지지 않는 등불」을 앍고 「추도사」편 김용옥(도올), 윤사순, 조옥환 등의 순서로 읽었다. 조옥환 사장의 제문은 잊혀졌던 명문을 꺼내 읽는 것보다 더 진솔한 느낌을 가슴에 새기는 구절들이었다.

“소제와 선생은 참으로 인연이 깊었다. 1976년이었던가? 처음 남명 선생을 찾아 덕천서원에 오셨을 때 소제는 선생이 하늘인 듯하였다. 조선의 위대한 처사인 남명 선생에 대하여 세상에 드러나지 못함을 한탄하셨으며 제대로 연구되지 못함을 애석해 하셨다. 그날 지리산 계곡에서 함께한 첫만남이 소제를 이렇게 뜻깊고도 가슴 아프게 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소제는 그때 남명 선조를 선생으로부터 새롭게 알게 되었다. 경의(敬義)의 학문이며, 조선조 최고의 선비이며 왕도 신하 삼지 못하는 위대한 절조를 갖고 있는 분임을 어리석은 장님에게 선생께서는 이렇게 눈을 뜨게 해주셨도다. 선생은 학자로서 남명 선생을 연구하시고 소제는 사업을 하며 작은 뒷받침이 되고자 하였네.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남명 선생을 생각했고 힘을 합하여 남명 선생을 염원하였다. 아아! 소제는 이제 누구를 믿고 일을 할 것이며 누구를 의지해 눈을 뜰 것인가? (후략)”

이 제문은 여늬 제문처럼 슬프고 애절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한 나라 역사에서 두 번 보기 힘드는 명현을 두고 연구하는 자리와 후원하는 자리가 뚜렷하면서도 그 후원이 아무도 닮고 따를 수 없는 선제적 자리에 있기가 힘들다고 볼 때 이 제문의 주인공은 가문이 내다 건 등불의 하나로 보인다. 그 자리를 김충열 교수의 선양의 길 구석 구석에서 밝혀지고 있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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