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 [8]섬노래길(8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 [8]섬노래길(8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7.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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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바다가 만드는 풍경에 '엄지 척'
‘섬노래길’은 이 코스에 있는 망산·남망산 정상에서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어 그렇게 부른다. 남해바래길 중 ‘별 5개’로 가장 난이도가 높다. 천하마을에서 출발해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코스다. 바래길이 주로 높낮이 없는 해안을 걷는 것이라는 개념이 있어 작은 산이라도 오를라치면 지레 겁부터 먹고 긴장한다. 그래봤자 해발 286m에 불과한 망산인데, 고산준령을 한달음에 달리던 산꾼도 느리게 걷는 바래길에서는 그새 “힘들다, 숨차다”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 망산에서의 남해전망이 아름다운데 안개 탓에 볼 수 없었으나 남망산에서 펼쳐지는 섬들의 잔치는 그나마 위안이 됐다. 남해 최대미항 미조항을 거쳐서 간다. 미조는 미륵(彌勒)이 도왔다는 뜻의 항구로, ‘미륵이 도왔다고 할만큼 아름다운 항구’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바다가 남·북으로 열려 있어 수산물과 어족자원이 풍부한 건 당연하다,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바다연안의 천국이다. 실제 남해 최고 미조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돼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설리스카이웨이에서는 우리의 민속놀이 그네를 응용한 고공 그네타기를 경험할 수 있다.
 
난이도 별 5개인 섬노래길에는 망산과 남망산이 있어 해안길 걷기와 함께 산행을 즐길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망산을 오르는 취재팀.
▲천하마을 출발→송정솔바람해변→망산정상(봉수대)→미조북항→남망산 정상→미조남항→설리해변→송정솔바람해변→천하마을회귀
총길이 13.8㎞ 휴식 포함 6시간 소요.

 

오전 9시 38분 천하마을, 비가 오락가락하는 탓에 비옷을 입었으나 1㎞도 못가 벗어던져야 했다. 덥기도 했지만 거추장스러운 게 이유. 천하마을은 한자 하늘천(天)이 아닌 내천(川)자를 써 ‘내 아래’라는 뜻이다. 금산에서 내려온 쇳개골과 내래골 맑은 물이 합수해 하나의 내(川)를 이뤄 몽돌밭을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송정∼설리간 농어촌도로를 따라 간다. 도로 옆 주행이라 차량안전에 주의해야한다. 이 도로를 따라 2시간 정도 계속 걸어가면 국도 19호선·3호선의 끝인 미조항에 닿는다.

발 아래, 파도가 해안에 부딪치며 일으키는 하얀 포말에서 거대한 바다의 기운과 생동감을 느낀다. 고개를 넘어 도로를 벗어나 송정솔바람해수욕장으로 들어간다. ‘꿈꾸는 솔숲, 넉넉한 바다품으로∼’ 도교육청 학생교육원 남해분원 입구에 걸린 글귀가 인상적이다. 과거 학교였으나 지금은 학생교육원으로 변모했다. 시설공사로 올 여름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길은 학생교육원과 공군생환훈련장 사이로 나 있다. 공군생환훈련장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상시 탈출해 바다나 육지에 고립됐을 때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극한의 조건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현장이 송정솔바람해수욕장인 셈이다.

출발 후 20여분 만에 송정솔바람해변의 장막이 열린다. 푸르고 맑은 바다, 소나무 숲, 시원한 바람, 푸른창공을 날으는 갈매기…. 상주은모래비치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해수욕장 중간에서 마을을 관통해 올라 19번도로를 건넌 뒤 별마루펜션을 지나 곧장 1.5㎞거리의 망산으로 치오른다. 중간 고갯마루는 송남리 미조리 초전리 설리를 가르는 곳.



 
망산 정상 봉수대


출발 1시간 20분만에 망산 정상에 도착한다. 거제 한산도에 망산이 있고 남해 가천에도 망산이 있는 것은 왜군들의 노략질 때문이다. 왜군들이 바다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호시탐탐 해안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이들의 동태를 살피고 망을 봐야했기에 망산이 많아졌다. 정상의 봉수대도 같은 이유에서 생겼다. 봉수대 방호벽 연대 연조 건물지 등이 남아 있으나 석축이 크게 무너져 형체가 70%정도는 사라졌다. 조선 전기 중종(1506∼1544년)에 설치된 미조항진의 권설봉수(자체봉수)역할을 했다. 남해군은 올해 봉수대 연대 기초학술조사 후 정비 복원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발굴조사 후 전면 정비계획도 세워 놨다.

안개가 짙어 바다와 섬조망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망산을 내려선다. 양쪽에서 우거진 울창한 숲, 풀잎 빗방울이 목덜미를 적신다. 군부대 시설 앞을 지나는데 CCTV를 보고 있었는지 갑자기 군인이 나타나 취재팀에게 사진촬영금지 등 제약을 했다. 임도를 만나면 줄곧 편안한 내림길이다.



 
갈매기 날으는 송정솔바람해수욕장


출발 2시간 20분이 지난 시각, 미조중학교 앞을 내려간다. 중학교를 새로 지으면서 산허리에 올려놓았다. 아름다운 미조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미조에는 바다목장 가두리 양식장 정치망 등 전국에서 제일 가는 수산물 산지이다. 현재는 남해군 수산업협동조합이 위치해 어선의 정박 수산물 양육과 유통, 명실상부한 해안 수산업중심지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전하기로는 부처님이 남해에 수행을 왔다가 물이 불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가 되자 부처님 앞의 마을 앞섬 하나가 자진해서 엎드려 디딤돌이 돼줬다. 미륵을 도운 디딤돌 그것이 미조다. 미륵이 도왔다는 사동형도 있어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다.



 
미조항의 국도3·19호선 출발점
천연기념물인 미조항 상록수림


정오께 항구 국도 3호선 19호선 출발점 바로 옆 생태적 가치가 높은 미조리 상록수림을 만난다. 사계절 잎이 푸른 나무의 숲, 바닷가 언덕의 경사면에 암벽노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방풍역할도 한다. 지역의 대표적인 상록수림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29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상록수 뿐만아니라 낙엽활엽수도 많아졌다. 숲의 가장 윗부분은 낙엽활엽수 느티나무 팽나무, 아래쪽은 상록수인 후박나무 육박나무 생달나무가 있다. 전체적으로 돈나무 메밀잣나무 말채나무 어죽굴피나무 졸참나무 누리장나무 초피나무 붉나무 에덕나무 조축싸리 도깨비고비 등 이름이 고상한 나무와 식물들이 즐비하다. 식물학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숲이 울창해지면 마을에 인재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꽃 나리


남망산으로 가던 도중 만나는 미조돌창고는 남해지역 특유의 유산이다.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 육지로부터 건축자재 조달이 쉽지 않아 산이나 바닷가에서 자체적으로 구해 집을 지었다. 주민들은 그렇게 돌이나 바위로 함께 마을 창고를 짓고 농산물을 보관하는 등 공동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본래의 용도에서 밀려나 카페나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은 폐쇄돼 있으나 남해 삼동면 시문마을 시문돌창고(1960년대)서면 대정리 대정돌창고(1920년)가 유명하다.

망산에서 안개로 인해 볼수 없었던 섬들의 잔치는 남망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 죽암도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조도 호도가, 중간중간에 쌀섬 목과도 소목과도 고도 등이 펼쳐진다. 조도와 호도가 유인도, 나머지 14개 섬은 무인도이다. 반대편에 내려다보이는 미조 남·북항이 뚜렷하다. 먼 과거 하나로 연결돼 있던 곳인데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 육지가 되면서 가옥들이 들어섰고 오늘날 분리가 됐다고 한다.

출발 4시간 30분 후 팔랑마을을 지나 설리해수욕장 설리마을로 향한다. 막 개장한 해수욕장에는 가족단위의 캠핑족이 파라솔 아래서 휴식하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가 ‘하얀 눈같이 깨끗하다’고 해서 ‘설리’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밤섬과 띠섬이 파도를 막아주는 천연의 평화로운 도원으로,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송정솔바람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피서객


오전에 오락가락하던 비는 세력을 잃었다. 어느새 뙤약볕에 달궈진 아스팔트는 훅훅 열기를 토해냈다. 19번 도로 설리 스카이웨이 오름길에서 휴식하기를 두 차례, 그늘 한 점 없는 길,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낸 몸뚱아리는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했다. 그야말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이른바 바래길 최악의 주행 컨디션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출발 5시간이 지난 시각, 더위와 갈증, 된오름길 삼중고의 주행 끝에 설리스카이웨이에 닿는다. 이곳에선 안전벨트를 채우고 그네를 탈 수 있다. 19번도로를 따라 30분을 더 진행해 천하마을로 회귀한다.

김윤관기자

 
남망산 오름길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미조항
 
미조북항 등대
설리해수욕장
 
설리스카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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