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44)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 그런 비난어린 눈총을 반격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빈손이다. 직함이 뚜렷한 사무실에서 퇴근하여 아버지를 대했던 10년 전 그날과 달리 고종오빠에게 빌붙어 사는 왜소하고 초라한, 게다가 여자로서의 그 어떤 기능도 상실해버린 중늙은이 노처녀로.
복잡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십자수를 놓고 있는데 뜻밖에도 수연이가 오고 있었다. 양지는 순간 아차, 싶었다. 오늘은 또 어떤 가슴 아플 사연을 갖고 온 것일까. 양지는 요즘더러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통으로 그냥 되는 일이 아님을 절절하게 느낀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매지구름을 몰고 양지의 기억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날은 수연의 학교 수업 참관일이었다. 학부모 자격으로 찾아든 교실에서 한바탕 소란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수연이 보였다. 온 힘을 다해 제 친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끌던 수연이 상대방이 힘껏 뿌리치는 완력에 의해 옆으로 나둥그러졌다. 몸 전체의 힘은 수연이 더 센 모양인지 먼저 일어나서 선제공격을 시도했지만 짧은 한 쪽 팔 때문에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한 수연은 다시 밀려나가 떨어진 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형국이 됐다. 아금받게 굴어도 다음 동작은 번번이 실패로 이어지는 거였다. 다시 일어나려고 버르적거리는 수연을 걸타고 앉아 상대방 아이가 패악을 부렸다.
“용용 병신 주제에 그림 좀 잘 그린다고 까불고 있어. 엄마 아빠도 없는 게. 뭘 믿고 까불어. 애들아 그렇지?”
“수연이가 왜 엄마 없는 아이야. 내가 수연이 엄마다. 왜!”
순간 물러서는 아이들의 눈이 호동그래졌다.
“일이 있어서 당분간 따로 지내는 건데, 몸이 안 좋은 친구를 이렇게 하면 되니?”
말하는 순간 수연이 먼저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양지는 모르는 척 대차게 엄마와 같은 자신감을 발휘했다. 그러자 놀란 아이들이 뒤로 물러서서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주고받는 폼이 저희들의 어긋난 정보를 나름 검색하고 있다. 양지는 자연스럽게 수연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옷차림을 바로잡아 준 뒤 손을 잡아보였다. 수연이가 얼마나 사랑받는 딸인지 보여주기 위해 깊이 끌어안기도 했다. 수연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칭찬 받은 수연의 그림이 교실 뒷벽에 붙여진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이런 곤욕이 뒤따르는 줄은 몰랐다.
“애들하고 늘 그렇게 싸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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