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36)
“걔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이제 와서 지가 그 사람을 보살펴야 될 의무라도 있나요. 듣고 보니 참 이해 안 되는 상황이네요.”
“그거야 인성이 불성이라고. 한 때 은애하면서 같이 살았던 정리도 있을 것이고, 그 동생이 연말 불우이웃 성금도 듬뿍듬뿍 내는 것 보면 그 나름으로 무슨 복안이 있겠지. 쓰는 돈에 따라서 돈 버는 보람도 있는 것이고, 어? 잠깐, 저, 저 사람이 또 저러네―.”
무슨 급박한 상황이 생겼는지 오빠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란, 아니 사람들의 내면세계란 참 복잡 미묘한 것이다. 주영아빠의 거취에 대해 호남이가 그토록 깊이 관여를 하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일에 양지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누구보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호남의 또 다른 이면이다.
“그래서 오빤 뭐래?”
다음 날 호남을 만나자 말자 양지는 주영아빠의 일을 먼저 꺼냈다. 호남은 다듬는 손톱 끝에다 신경을 모은 채 건성으로 물었다.
“널 알다가도 모른겠는 건 나하고 같지.”
“그렇겠지, 나도 나를 모르겠으니까.”
“대체 어쩔 셈인데.”
“뭘?”
“미쳤어?! 인생이 불쌍해서 그런 거지 확대해석 하지마라. 내가 뭐 덕 볼게 있다고. 꼴값 떨면 국물도 없을 줄 알라고 해.”
“그렇다면 착각하게 하지 마.”
“알았어. 메밀대 모양 줏대 없이 살면 지가 X찬 남자라고 별수 있어? 인간아, 인간아 싶어서 길고양이 먹이 주듯 조금 준 것 뿐이니까 마음 쓸 것 없어. 우리 술이나 한잔 하자.”
돌연 일어선 호남이 맥주와 안주를 내온다.
“어제는 어디 간 거야, 나한테 간다고 했다며?”
양지도 시원하게 냉각된 맥주를 받아들면서 일상의 대화거리로 화제를 돌렸다.
“언니가 뭐 최쾌남이 밖에 없나. 나한테 쌨고 쌨는게 언닌데.”
말해놓고 후훗 하고 웃음을 다는 호남을 따라서 양지도 따라 웃었다. 호남은 이제 사업가다. 노는 물이 다르니 만나는 많은 사람 중에는 언니나 오빠도 있는 게 당연하다. 그게 최호남의 인성이니까.
“그건 그래.”
양지의 말이 끝나자 정색을 한 호남이 호콩을 까다말고 답했다.
“사실은 용재 네한테 다녀왔어.”
양지는 말없이 호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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