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의 경남극단사 막전막후 (1)밀양 극단 메들리
이상용의 경남극단사 막전막후 (1)밀양 극단 메들리
  • 경남일보
  • 승인 2024.06.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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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갑, 손경문 위해 'MADLY' 창단 '내가 반역자냐' 창단 공연
김용식·정태화, 다방 빌려 공연한 밀양 살롱드라마 전국적 유행
현재 밀양아리나 상주단체로 활동…연극인들과 함께 한 57년
 
밀양 메들리 2023년 공연 작품 ‘안해’. 사진=메들리



오늘날의 한국연극은 일제강점기의 동경 유학생들이 일본으로부터 배워온 연극이 그 모태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신극(新劇)이 바로 그것인데, 그런 신극을 국내에 소개한 대표적인 단체로는 동경학생예술좌를 들 수 있고, 대표적인 연극인으로는 통영의 유치진과 마산의 이광래를 들 수 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경남을 넘어 한국연극의 선구자란 평가를 받는다.

우리 경남에는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극단이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는데, 그런 사실은 경남 연극사가 뚜렷이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각 극단의 역사는 그 자체가 바로 그 지역의 연극사(史)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도내 극단들의 면면과 그 궤적을 7회에 걸쳐서 살펴보려 한다.

그 첫 번째가 밀양극단 메들리(MADLY)다. 극단 메들리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초창기의 밀양 연극을 잠깐 언급하는 것이 순리겠다. 밀양 연극은 해방과 더불어 ‘아, 무정’과 ‘상해 야화’ 등이 공연됨으로써 시작되고, 그 중심인물로는 강마상·강승희·강하영·강한석·김열·민병표·박창숙·안영·이상국·조희수 등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밀양 하면 연상되는 예인으로는, ‘애수의 소야곡’과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작곡한 박시춘, 그리고 ‘모란 동백’을 쓴 이제하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하고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왜 극단이름이 메들리일까. 필자는 메들리란 이름을 처음 듣고는, 트로트의 메들리(medley)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으나,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저런 의문도 해소할 겸, 그리고 또 극단 메들리의 창단 비화도 들어볼 겸 해서, 밀양의 원로연극인 박진갑(1945년생) 형을 마산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다.

 

1968년 제3회 메들리의 밤 초대장. 사진=메들리
1968년 제3회 메들리의 밤. 박진갑 연출의 연극 ‘탄갱부’를 소개하는 초대장. 사진=메들리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가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필자는 질문부터 해댄다. “형님, 메들리를 작명할 때 ‘Young’(젊은)이란 단어는 왜 넣었능교?”

그러자 그가 “우린 그때 20대 초반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거든. 일종의 만용을 부렸다고 봐야제. 마침 음악(Music)·미술(Art)·연극(Drama)·문학(Literature) 등에 관심이 많은 열혈 청년들이 모여서 극단 이름을 작명하려 했는데, 맨 끝 단어 하나가 비는 거요. ‘MADL’로는 단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참여한 멤버 모두가 청년이었고, 또 다들 ‘Young’이란 단어를 맨 끝에 집어넣자고 해서 극단이름을 ‘메들리’(MADLY)로 정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Young이 아니라 Youth가 돼야 맞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우린 그때 그냥 그렇게 했어요. 허허허”라고 당시의 사정을 덤덤히 밝히는 것이 아닌가.

1970년 메들리의 밤 초대장. 사진=메들리
1970년 메들리의 밤 초대장 속지 사진=메들리

 

그렇게 해서 극단 메들리는 그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린다. 때는 바야흐로 1967년이고, 장소는 박진갑의 집이다. 그때 참여한 면면은 박진갑·박근원·김흥묵·손경문·이무자·이상구 등등이고, 당시의 화가 지망생 이두옥(동아대 미대 학장 역임)·안현일(동아대 미대 교수 역임)·백낙효도 고교생으로서 참여한다. 메들리를 창단한 그들은 창단 기념으로 ‘내가 반역자냐’(소정자 작·박진갑 각색·손경문 연출)를 무대에 올린 후, ‘아리랑’·‘원고지’·‘탄갱부’ 등등의 작품을 계속 공연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많은 사람이 극단 메들리의 창단을 손경문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박진갑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밀양 메들리 1967년 창단공연 ‘내가 반역자냐’ 공연 무대. 사진=메들리

 

그 전말(顚末)을 살펴보자. 박진갑은 손경문보다 2년 선배이고, 당시에 박진갑의 집은 식용유를 전국적으로 판매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은 부자였기에, 메들리의 창단이 박진갑의 집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단다. 당시에 박진갑은 겨우 23세에 불과했고, 그 한 해 밑이 김흥묵, 그 한 해 밑이 손경문이란다. 당시에 박진갑은 연극보다는 문학에 관심이 더 많았기에, 메들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극적인 재능이 뛰어난 손경문을 위해서 창단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밀양 메들리. 1968년 ‘아리랑’ 공연 모습 사진=메들리
1979년 공연작품 ‘이수일과 심순애’ 회원권. 사진=메들리


그렇다면, 손경문은 어떤 인물일까. 부산공고 학생회장 출신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손경문. 하지만 그의 어릴 때의 가정환경은 매우 불우했다. 그런 환경임에도 그는 시도 잘 쓰고 연극도 잘한 학생이었다. 그런 손경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부산의 어느 신발공장에 근무하다 큰 사고를 당한 후,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극단 메들리에서 연극을 시작함으로써 그와 메들리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는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인생 전부를 메들리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메들리와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메들리의 대표와 연출을 오래 맡는다. 그를 잘 아는 박진갑은 “경문이는 연출보다는 배우를 했으면 훨씬 더 대성했을 인물”이라고 아쉬워한다. 또한, 손경문은 밀양 고교생극예술연구회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에게도 연극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손경문은 어느 시기 메들리를 떠나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그만 뇌종양으로 타계하고 만다.

 
2013년 열린 밀양 메들리 46주년 기념 전시회. 사진=메들리

 

손경문의 뒤를 이은 연극인이 김용식과 정태화다. 김용식도 한동안 메들리의 대표와 연출을 맡았고, 정태화는 나중에 서울로 가서 극단 미추에서 배우로 활동한다. 그들은 한 시기 다방을 빌려서 연극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밀양 살롱드라마의 시작이자 전국 살롱드라마의 효시(嚆矢)가 된다.

2011년부터는 김은민이 극단 메들리 대표를 맡는다. 그녀 또한 손경문이 만든 밀양 고교생극예술연구회 출신이기도 하다. 어느 극단이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전국 대부분의 극단은 연륜이 쌓여감과 동시에 내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극단 자체가 아예 없어지거나 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의 토월회를 비롯한 수많은 극단이 그 단적인 예다. 메들리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메들리는 그런 내분을 잘 수습하고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78년 ‘팔자 좋은 의사 선생님’ 공연 모습. 사진=메들리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출발’·‘이수일과 심순애’ 등등은 손경문이 연출한 작품이고, ‘밤의 묵시록’·‘토끼와 포수’·‘독배’ 등등은 김용식이 연출한 작품이며, ‘달빛 아래 꽃이 지고’·‘안해’·‘지금 내려갑니다’ 등등은 김은민이 연출한 작품이다. 역대 경남연극제에서 단체 금상과 은상 등등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는 메들리는 현재까지 126회의 정기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 밀양아리나에서 상주단체로 활동 중인 메들리는, 김은민 대표를 비롯한 이현주·장준호·황혜림·정면곤·김위곤·최은진·권경은·이홍익·김민경·한유진 등등 24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젠 밀양을 넘어 해외 공연까지 준비하는 5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메들리. 그 메들리가 영원토록 번창하길 기원한다.

이상용 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밀양 메들리 ‘지금 내려 갑니다’ 공연 모습. 사진=메들리
밀양 메들리 2021~2023년 공연작 ‘까레이스키 아리랑’ 공연 출연진. 사진=메들리
밀양 메들리 ‘까레이스키 아리랑’ 공연 모습. 사진=메들리


※극단 메들리는 1967년에 밀양에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밀양을 문화 예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함께 할 수 있는 MADLY(M-Music, A-Art, D-Drama, L-Literature, Y-Young)라는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만들었으며 창작극을 지향하면서 사실주의극, 무언극, 음악극, 부조리극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올해로 창단 57주년을 맞이했다.

※이상용 전문가는 1971년부터 지금까지 53년간 연극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원로 연극인이다. 현재 극단 마산 대표이자 극작가로 활동 중이며, 연출가·문학박사로도 활동해 왔다. 최근 한국 현대 연극의 선구자 이해랑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4회 이해랑 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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