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미래에 대한 향수
[경일춘추]미래에 대한 향수
  • 경남일보
  • 승인 2024.06.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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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 시인
이필 시인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마지막으로 관 위에 흙을 뿌릴 때 사제는 영원한 것 뒤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1549년 첫 번째 공동기도문에 설명된 상장의식에 처음 나타난 ‘재에서 재로(Ashes to ashes)’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과 추방에 대한 ‘창세기’ 3장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24절기 중 망종(芒種)으로 시작하는 6월에는 까끄라기 곡식 종자를 뿌린다. 보리 이삭이 누렇게 패고 모를 심는다. 산에는 뻐꾸기가 울고 찔레꽃이 흐드러진다. 이 맘 때 나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녹음이 번지는 산중턱에 아버지를 뿌리고 돌아와 사흘을 울고 사흘을 잤다. 그러고는 하릴없이 신발을 끌고 밭에 나가 콩과 옥수수를 심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는 인중이 길었다. 요즘 세상에도 바보처럼 운명이란 말을 믿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젖은 불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6월로 모여드는 시간은 마르지 않는 우물 같다. 진심에 진심을 다한 사람은 자기 안의 우물에서 절반의 달을 키운다. 달이 하나가 아니라면 나머지 절반의 달은 어디에 있을까. 나다운 것이 부족한 나는 아버지인 척하고 있다. 아버지인 척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마치 중독된 것처럼 같은 사람을 두 번, 세 번 반복한다.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살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의 수가 앞으로 살 사람보다 더 많다는 뜻일 게다. 지난 5만 년 동안 100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죽은 것으로 추산한다. ‘라이프 스타일 철학자’로 알려진 로먼 크르즈나릭에 따르면 21세기 출생률과 수명이 이 추세라면 6조 7500억 명이 태어날 거라고 한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 좋은 조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게 아닐까?

지구의 나이보다 더 많은 50억 년 된 운석 파편이 있다. 운석은 어쩌면 지구라는 행성으로 생명을 실어나른 우주의 방주였을지도 모른다. 서호주에는 생명에 대한 최초의 결정적 증거 34억 년 된 스트로마톨라이트도 있다. 시간의 심연으로 굴러떨어지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4억 5000만 년 전에 암석 위로 떨어진 비의 냄새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최초의 몸, 최초의 눈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산이 만들어지고 계곡이 형성되는 데에는 방대한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것은 먼 시간, 즉 시작의 흔적도, 끝의 전망도 없는, 이해의 범주 밖에 있는 시간이다. 신을 모르고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영원의 뒤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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