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2)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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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2)

이때 가장인 주인어른은 준엄한 눈길로 집안사람들을 죄 훑어본 뒤 죽을 때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하고 살 때 살더라도 같이 살아야하는 것이 가족이니 누구 하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저 대문 밖으로 혼자 썩 떠나라고 엄포를 놓았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어른으로써의 지당한 뜻에 감히 연대된 줄을 끊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이 가려진 가족은 앞서 인도하는 어른의 몸에 묶인 줄에 이끌려 몇 날 며칠 길을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도착한 곳이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주먹밥을 먹었고 잠을 잤다.

그런 며칠 후 드디어 전쟁이 끝났으니 가려진 눈을 풀라는 명이 떨어졌고 가리개를 푼 가족들의 눈앞에는 기막히고 어안 벙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집결해 있는 곳은 멀고 먼 타지가 아니라 바로 자기네 동네의 한 골목이었던 것이다. 시선을 둘러보자 집채만큼 쌓인 눈으로 사방이 막혀있고 그들이 지나다닌 길만 생쥐들이 드나든 것처럼 빠끔하게 열려 있었다. 어른이 끄는 줄을 따라 가족들은 마을길을 뱅뱅 돌며 전화며 설화까지를 피했던 것이다

난리를 피해 집을 떠났던 많은 이웃 중에는 객사 죽음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이 이야기를 마친 뒤 시아버지는 강조하셨다.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 것이 수장에 대한 신뢰며 가족 간의 단합이었다. 은근히 가부장의 위상이며, 자신이 왜 남존여비, 특히 남손의 출산에 대해 집착하시는 지에 대해 덧붙이시는 말미에 그만 또 가슴이 턱 막혔다. 오늘 뿐만 아니라 대좌하여 환담을 하신 뒤에는 언제나 이런 식의 자손타령으로 결말이 지어졌던 것이다.

아바님 말씀은 저저이 옳은 말씀이다. 어른이며 어른 나름으로 지키고 가꾸어야할 가업에 대한 고뇌를 인정해 드려야한다. 아버님은 역시 어른다우신 엄격함을 갖추시고 아랫사람이 거역 못할 탁월한 능력을 갖추신 분이다 .그러나 무조건 적인 추종은 곤란하다. 우리 내외의 경우는 장업도 장업 나름이며 어른도 어른 나름이고 자식도 자식 나름인 것을 영 인정안하신다. 아바님의 그 우격다짐은 장차 무슨 큰 화의 수레바퀴가 짓질러 올 것처럼 두렵기 그지없다.



-남들 부부도 다 그렇게 사는지 요즘 와서 돌이켜 보니 의문 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나한테 무슨 병이 있어서 그럴까 하다가도 서당에 다녀와서 애기처럼 자고 있는 남편을 창에 드리운 달그림자 고요한 밤에 홀로 잠 못 들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밖에 나지 않는다. 다른 부부들도 다 이렇게 사는가. 대체 아이는 언제 들어서서 낳게 되는가. 오늘밤에도 아바님이 순라를 도시다가 당신의 아들이 이 방에 안 든 것을 아시고 사랑에서 내쫓으셨으나 나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인양 외면을 하고 들어온 사람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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