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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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3. 땅 길에서 하늘 길까지
이윽고 빗물에 멱을 감은 왕의 행차가 개성에 당도했을 때였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어가를 향해 돌멩이가 날아들고, 욕설과 함께 비난하는 고함소리가 높았다. 임금이 타는 수레지만 날아서 피할 수 있지 않은 이상 돌멩이와 비난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형편이었다.

“전하! 이 고을 사민(士民)들이옵니다. 전하께옵서 이런 일을 당하시도록 만든 불충한 소신들을 벌하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호종했던 신하들이 어가를 에워싸서 자기들 몸으로 왕을 보호하며 피맺히게 울부짖었다. 왕의 두 눈에 혜음령 고개에서 맞은 빗발보다도 굵고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조가 서천길에 오른 일은 조선 땅 곳곳에 숱한 악영향을 미쳤다. 전라순찰사 이광, 경상순찰사 김수, 충청순찰사 군국형은, 도성방위를 위해 군대를 이끌고 상경하던 중 그 소문을 들었다.

“허,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오?”

근왕병 3만을 이끌고 광교산에서 싸웠으나 패하기도 하는 이광이 말했다.

“큰일이오. 군사들 사기가 형편없이 땅에 떨어지고 있으니…….”

저 유명한 남명 조식의 임종을 지켜보고 그의 유품인 칼을 받은 정인홍과 교분이 깊은 김수의 말에 군국형이 체념한 목소리로,

“어쩔 수 없소이다. 군대를 해산시키도록 합시다.”

슬프고 원통한 노릇이었다. 큰 뜻을 품고 모인 의병이 흩어진 일은 또 있었을 것이다. 양반들 사이에서도 뜬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

조정에서는 급히 왕자들을 여러 곳에 파견하여 근왕병을 모집케 하고 명나라에 원병을 청했다. 일설에 의하면, 선조의 서자이지만 서열이 첫째여서 세자가 될 수 있음에도 성질이 난폭해 아우인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임해군은 함경도로, 훗날 순화군의 군호까지 박탈당할 정도로 역시 평이 좋지 못했던 선조의 여섯 번째 아들인 순화군은 강원도로 떠났다. 아픈 역사였다. 특히 임해군의 장남인 일연은 가등청정에게 인질로 잡혀 두 살 위의 누이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할 줄은 뉘 알았으랴.

한편 침공군 총지휘관인 8번대 주장(主將) 우희다수가는, 5월 2일 부산에서 한성 점령의 보고를 받고 한성으로 북상하면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큰소리쳤다.

“으하하핫! 생각보다 너무 빨리 전쟁이 끝나겠구나. 이거야말로 모기를 보고 칼을 빼든 꼴 아니냐? 모기 피 정도의 피도 손에 못 묻히고 그냥 귀국하는 거 아닌가?”

풍신수길의 신임이 굉장히 두터워 오대로(五大老)의 한 사람이 되지만, 관원 싸움에서 대패하여 팔장도(八丈島)에 무려 50년간 유폐되었다가 죽었다는 우희다수가. 한성에 입성할 때는 의기양양해도, 이듬해 행주 싸움에서 권율 장군에게 크게 패하여 부상을 입고 철군한다.

풍본에 대기 중인 9번대를 제외한 침공군이 모두 조선 땅에 들어왔고 대부분 한성에 집결했다. 그들은 10여 일을 머물면서 제장들이 북진계획을 의논했다. 우희다수가가 결정을 말했다.

“소서행장은 평안도로, 흑전장정은 황해도로, 가등청정은 함경도로, 도진의홍과 삼길성은 강원도로, 그 밖의 4진은 한성을 비롯한 후방지역을 담당토록 하시오. 나는 한성을 지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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