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7]함양 선비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7]함양 선비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8.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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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따라 바위 따라 자연을 거닐다
한 폭의 산수화 속에서 선비가 되다
◇정자문화의 보고인 함양 선비길

현재 우리나라에 선비길이란 이름으로 둘레길을 조성해 놓은 곳은 함양 선비길, 안동 선비길, 논산의 노성선비길, 합천 삼가 남명 조식 선비길, 순창 선비길, 소백산(영주) 선비길 등 모두 6곳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선비’다.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나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인 선비야말로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주체라고 믿어왔다.

어쩌면 그 거룩한 의미를 지닌 선비라는 말에 이끌려 ‘함양 선비길’ 탐방을 오래전부터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진주토요둘레길 회원들과 함께 진주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화림동계곡 함양선비문화탐방로(선비길) 출발점인 거연정에 도착했다. ‘거연정-봉전교-영귀정-동호정-호성마을-람천정-농월정’까지 함양선비문화탐방로 1구간 6㎞를 탐방하기로 했다.

 
거연정 옆의 화림계곡.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화림동계곡의 수량이 꽤 많았다. 도량이 넓은 선비들의 학덕을 보는 듯해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맨 먼저 만난 정자는 ‘거연정(居然亭)’이다. ‘자연에 머물다’는 뜻을 지닌 이 정자는 계곡 가운데 있는 암반 위에 세워져 있고 양옆으로 흐르는 화림동계곡 물줄기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정자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기암괴석 등이 모두 정자가 거느린 정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거연정이 있는 봉전마을은 조선 5현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던 곳이다. 마을 선비들이 해동의 군자였던 일두 선생을 기려 마을 앞 냇가에 군자정을 지었다고 한다. 단아한 군자정의 모습을 뒤로 하고 선비문화탐방로 초입으로 향했다.

 
거연정.
◇참된 선비의 도리를 일깨워 준 선비길

봉전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거연정과 기암괴석이 진열된 화림동계곡은 정말 절경이었다. 봉전교 건너 계곡을 따라 조성해 놓은 데크길로 150m쯤 가니 ‘영귀정(詠歸亭)’이 나타났다. 벼슬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택한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를 읊다’는 뜻이 담긴 정자다.

계곡과 숲 사이 데크로 길을 열어놓은 탐방로를 따라 다곡마을과 통영대전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 동호정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동호정의 명물인 나무 사다리를 오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동호정 전망대에 닿자 불어난 계곡물로 인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건너편 동호정으로 건너갈 수가 없었다. 화림동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자태를 지닌 건축물로 평가받는 정자라 꼭 보고 싶었는데 몹시 아쉬웠다.

 
동호정과 너럭바위.
그런데 동호정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깜짝 놀랐다. 임진왜란 때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호성원종공신으로 책봉된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동호정을 지었다고 한다.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벼슬아치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지었다고 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경위에 벗어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임금에게 옳은 말을 해서 바른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신하이자 참된 선비의 도리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군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선조의 어명을 거역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심을 다했다. 백성과 나라를 위해 신의를 지킨 사람에게 진정한 충신, 참된 선비란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동호정 앞 풍류를 즐기며 노래를 부르던 곳인 영가대와 악기를 연주하던 금적암을 보지 못한 채, 농월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폭이 강처럼 넓어진 계곡에서 몇몇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장마 틈에 돋은 햇볕을 즐기느라 숲에서는 매미들이 떼창으로 여름찬가를 불러대고 있었다.

계곡을 살짝 벗어난 선비길은 호성마을 들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볏논과 한창 영글어가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을 지나 호성마을 앞 경모정에서 목을 축인 뒤 다시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가니 화림동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람천정이 나타났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잠깐 물멍을 한 뒤 농월정을 향했다.

 
농월정 쪽으로 내려가는 화림동 계곡물.
농월정 화장실 벽에 그려놓은 벽화.
◇풍류를 누리던 함양의 무릉도원, 농월정

야자 매트가 깔린 길과 시멘트 길을 번갈아 걸어서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숨진 안의현감 곽준, 함양군수 조종도 등 순국선열 3500여 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놓은 사당인 황암사를 참배한 뒤 곧장 농월정으로 향했다. 화림동계곡을 따라 조성해 놓은 데크길을 걸어가니 계곡 건너편에 새로 단장한 농월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농월정.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즐겨 찾던 곳이면서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그 굴욕을 견디지 못한 지족당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곳이 농월정이다. 화림동계곡 경관의 백미라 할 정도로 명승지다. 농월정에 앉아 하늘에 뜬 달과 계곡물에 비친 달을 보며 음풍농월을 즐긴 선비의 풍류가 배어있는 농월정, 지금도 그 운치는 그대로였다.

4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정자인 농월정은 2003년 불이 나면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2015년에 복원되었다. 1000여 평이 넘는 너럭바위와 계곡물, 소나무와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두타산 무릉계곡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절경이다. 농월정을 떠나 진주로 오는 길에 지안재와 오도재를 넘으면서 아름답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 하나를 눈에 담고, 선비길에서 만난 조선 선비의 삶을 마음에 품고 돌아왔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논둑길을 이용한 선비길.
농월정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
사과가 영글어가는 사과밭.
오도재에 세워놓은 시비.
야자매트가 깔린 선비길.
지안재 풍경.
데크로 만들어 놓은 선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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