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지키는 88세 의사 구자운
시골마을 지키는 88세 의사 구자운
  • 백지영
  • 승인 2024.09.12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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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부터 남강 줄기 따라 왕진 추억 켜켜이 쌓여
일제에 말 뺏긴 기억서 시작된 승마 사랑 ‘진행 중’
‘아파도 치료받기 힘든 시골 농민을 위해서 의사가 돼야겠다.’

마도로스(선원)를 꿈꿨던 10살 소년이 새로운 꿈을 품은 건 한 순간이었다.

일제강점기 곡식을 수탈당한 아버지는 들끓는 울분에 밤이면 위경련으로 앓아누웠다. 고통에 시름하는 아버지를 위해 한밤중에 멀리 마산에서 왕진 의사를 불러 온 게 몇 번이었던가. 온 동네 이웃들 돈을 빌려 왕진비를 지불하고 의사를 돌려보내던 길, 소년은 마음 먹었다. 내가 의사가 돼서 치료 한번 받기가 천릿길인 이 시골 마을 농민들을 치료하기로.

그 결심을 지키는 건 고난의 연속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 엄한 어머니 아래에서 말 그대로 주경야독에 나섰다. 다행히 공부 머리는 있었다. 가정교사 일 등을 하며 고학으로 6년의 의대 공부를 마치고 의사 생활을 시작한 건 1963년,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고향 함안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 구자운(88) 원장 이야기다.

 
함안 군북에서 88세의 나이에도 병원을 지키는 의사 구자운 원장이 의원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백지영기자
그가 함안 군북면에 구자운 의원을 차린 건 지난 1967년이다.

“군의관 마치고 나왔는데 돈이 없어서 개업은 불가능했지. 그렇다고 대학에 남아서 공부를 이어가려니 가족들이 굶어 죽을 판이지. 그래서 공의(공중 보건의)를 자처했어. 그러면 당시 군수 월급 3배를 줬거든. 그렇게 갔던게 함양 서상이야. 지리산 아래 오지 마을에 있는 학교에 교의로 갔지.”

이후 함양군 보건소장, 산청군 공의 등을 거친 구 원장은 1967년 지금의 자리에 의원을 개업했다. 이곳 함안에서도, 앞서 산청과 함양에서도 그의 눈길은 늘 농민을 먼저 향했다. 휴일도 반납했다. 명절이면 오전에 제사를 지낸 뒤 오후부터 바로 진료에 들어갈 정도로 평생을 밤낮으로 환자를 만났다. 막내 아들에게 병원을 물려주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을 딴 병원에서 월급쟁이 의사로 일하기 시작한 약 10년 전부터야 삶에 여유가 찾아왔다.

구 원장은 서울에서 의대 교수를 준비하다 아버지와 형의 끈질긴 요청에 고향 땅에 내려와 의원을 인수한 막내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제부턴 네 병원이니 어떻게 운영하든 네 자유지만, 적어도 나 죽을 때까지는 주말에 갈 곳 없는 환자들을 위해 병원 문을 열어다오. 나 역시 주말마다 환자들을 만나마.”

그렇게 평일은 평생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즐기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환자를 돌보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며 울릉도·대전 등 멀리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순 없었다.

“함안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 중이지만 여기까지 먼 걸음 하는 환자들도 있지. 심리적인 병도 있는데, 나를 보려고 여기 오는 환자를 두고 떠나면 그 병이 낫겠어? 나라고 다른 의사들보다 특별히 기술이 좋아서 환자를 낫게 한다기보다는 환자의 믿음에 응해주는 거거든. 그러니 병원을 떠날 수 없어.”

 
야외 승마에 나선 구자운 원장. 사진=구자운

구 원장은 여전히 자신이 정정하게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의 요즘 최고 관심사, 승마 덕이라고 말한다.

실제 매주 5일 함안군승마공원을 찾아 자신의 말 소울(Soul)을 탄다. 잘 닦인 실내외 승마장을 뒤로 하고 공원 옆 산길로 향한다. 산길을 달리는 2시간과 말을 씻기고 돌보는 1시간을 더하면 매일 꼬박 3시간을 이곳에서 머문다.

말에 대한 그의 사랑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 말이 있어서, 아버지가 말을 탈 때면 그가 뒷자리에 오르곤 했지만 일본이 놋그릇부터 집안의 모든 값어치 나가는 것들을 모두 빼앗아 가면서 말과도 작별해야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늘 머릿속에서 말이 떠나지 않았지. 의대 시절 동기들과 졸업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 얘기할 때면, 친구들은 차를 사겠다고 했지만 나는 말을 살 거라고 농담처럼 얘기할 정도였어.”

농담처럼 얘기했던 말을 다시 만난 건 마흔, 막내 아들의 집중력을 기를 방법을 고민하던 때였다. 인내력과 지구력, 정신력 등을 키우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 말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들과 함께 말고삐를 잡았다. 그렇게 승마를 시작한 지 내후년이면 50년, 희끗희끗한 눈썹을 휘날리며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나서는 그에게는 ‘승마계의 전설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몽골로 떠나 드넓은 초원을 달리고, 지구력 승마대회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보다 빨리 들어와도, 늦게 들어와도 실격인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꾸준히 야외 공간을 달리는 대회로 2022년 첫 도전 당시는 10㎞, 올해는 20㎞에 출전해 완주했다. 내년에는 40㎞도 도전해 완주하는 게 목표다.

 
구자운 원장이 함안 백산 강변에서 승마를 즐기고 있다. 사진=구자운
의사와 승마인 외에도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수필가와 서예가가 대표적이다. 공중 보건의 시절 ‘후생신보’에 수필 연재 의뢰를 시작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한 그는 오랜 기간 재야에 머무르다 1992년 ‘문학세계’·‘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했다. 승마와 마찬가지로 시작한 40살에 시작한 서예 역시 스승인 소은 박장화 선생과 교유하며 아래 오랜 기간 붓을 들다 보니 자연스레 등록 미술인 이름표를 달게 됐다. 함안문인협회와 함안미술협회에서 활동하며 1999년에는 함안예총을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아들에게 의원을 넘긴 후 삶에 여유가 찾아온 구 원장은 평생 자신과는 인연이 없었던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지리산과 남강 줄기다. 지리산 꼭대기부터 남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함안까지, 골짜기와 물길을 따라 시골 마을 왕진에 나섰던 오래전 추억이 켜켜이 서려 있다. 이 골짜기는 오토바이 한 대에 의료 기구가 든 가방을 싣고 정관 수술 하러 왔던 곳, 저 골짜기는 학교 교실을 한 칸 빌려 어린이 뇌염 환자를 머물게 하며 한 달 동안 치료했던 곳, 그 골짜기는 눈이 하얗게 내린 달밤 산모의 출산을 도운 후 나오다가 공동묘지에서 여우쯤 되는 동물을 마주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곳.

 
구자운 원장이 자신의 말 소울과 교감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함양과 산청은 물론 함안에 와서도 왕진을 참 많이 다녔어. 예전에는 왕진이 활발했거든. 의료보험이 생긴 후론 왕진비 청구가 안 되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환자가 아프다고 야밤에 치료를 청하면 달려갔어. 다 내 친구인데 어떻게 거절해? 그냥 무료 진료를 해준 거지.”

60대부터 노인으로 분류되는 시대, 노익장을 과시하며 진료는 물론 승마 등 취미 생활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그의 삶은 KBS 인간극장 등 방송에 소개되며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안겼다.

방송 이후로는 멀리서 그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 구순이 목전인 그가 여전히 의술을 펼치고 있을 거로 생각지 못했던 옛 시절 환자들이 반가워하며 찾은 것. 그렇게 재회하게 된 이들과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다시 찾아온 환자에 대한 반가움이라기보다는, 정 들었던 보고 싶은 친구가 왔다는 마음이다.

구 원장은 “이제는 쉬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의원을 찾는 환자를 외면할 순 없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때까지는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구자운 원장. 백지영기자
구자운 원장이 함안승마공원에서 자신의 말 소울을 고삐를 잡아 끌고 있다. 백지영기자
구자운 의원 전경.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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