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세시화를 기다리며
[경일춘추]세시화를 기다리며
  • 경남일보
  • 승인 2024.08.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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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영 마루문학 대표
안채영 마루문학 대표


자연은 도덕이었다. 나무는 뭔가에 지고 있었다. 보살핌이 없다면 지고 쓰러지는 것들은 인간이 빌려서 거둔 것 들이었다. 실내에 있었던 생물들이 무언가에 지는 순간 내쳐짐을 당해 밖으로 던져졌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바스락 거릴 때쯤 가지 일부는 떨어져 나갔다.

큰 화분에 눈이 가긴 갔으나 달리 어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봄이 오니 새파란 싹이 그 곁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뽑을까 말까 하다 생각에 잠긴다. 겨우내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는데 하며 잡초라도 그 노력이 가상해 뽑지 않았다. 아니 잡초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살게 하고 싶었다. 그런 맘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여린 싹은 어느 날부터 제법 실한 대궁을 키워내고 있었다. 키만 멀대같더니 여름 어느 날 아주 작은 꽃을 피웠다. 별같이 생긴 아주 작은 꽃이 근사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그것이야 인생 뭐 별거 있어, 소 뒷걸음치다 한 건 하는 날인 게지. 잡초 인생이라지만 꽃피는 날도 오는 게여, 암 그렇고말고…’ 궁시렁 거리며 잡초가 핀 화분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실내로 다시 들여와야 했다. 별같이 총총 박힌 꽃 화분을 낑낑대며 남편도 합세해 낑낑대며 어찌어찌 겨우 들여놓았다. “아이고 우두둑 허리 금 갈 뻔 했네 허참…, 보도시 들여 놨네”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꽃 대궁을 받쳐주고 더러운 화분을 깨끗이 닦고 닦아 윤까지 냈다. 그리고 자리 또한 이왕이면 제일 중심 자리에 앉혀 두기로 했다.

그러니 무슨 꽃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앱으로 확인했다. 오후 세시에 꽃이 핀다 하여 세시화라는 별칭이 붙은 자금성이다. 벼락출세를 한 셈이다. 다른 화초들이 세시화를 쭈욱 따르는 형국이 돼 더 이상 빛이 나지 않는다. 거기다 3시에 꽃을 보러 오는 이까지도 생겼으니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까.

시장 난전에서 산 삼천 원 티셔츠가 생각났다. 볼품이 없는 티셔츠였는데 어쩌다 드라이 맡기는 옷에 끼여 가서 드라이클리닝이 돼 돌아왔다. 어느 날 그옷을 입었더니 사람들이 무슨 메이커냐고 명품 티셔츠인양 물어 보던 일이 생각났다.

3000원짜리 티셔츠도 드라이클리닝으로 고급 의류로 대접받듯이 세시화에게 조명까지 비춰 주었더니 정말 고급 화초가 됐다.

조물주의 조화를 흉내 낸 내가 오히려 세시화를 동경한다. 그러니 열심히 살 일이다. 부지런히 스스로를 다듬고 때를 기다려야 할 일이다. 내 인생도 그리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세시화가 피는 오후 3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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