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멀쩡한 타이어매트 철거 그리 급한 일인가
[경일시론]멀쩡한 타이어매트 철거 그리 급한 일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4.08.1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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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국립공원 지리산 계곡은 여름철 최고 피서지다. 올해처럼 여름나기가 그리 힘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 주말 더위를 피할 겸 여름철 야생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한신계곡을 찾았다. 잦은 비 덕분에 첫나들이폭포, 가내소, 오층폭포 등 한신계곡 폭포수가 굉음을 내며 청량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숲길을 지나 세석평원 도착 직전 된비알 데크 계단을 오를 땐 숨이 턱턱 막히는 듯 했지만, 길섶 모싯대, 산수국, 산오이풀, 며느리 밥풀꽃 같은 여름 꽃 덕분에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세석대피소에 잠시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고 촛대봉으로 향했다. 세석고원 습지 조금 못 미친 곳에 시커먼 물체가 쌓여있어 다가갔더니 폐타이어 매트 더미다. 한신계곡 마지막 계단구간에서 밟고 지나왔던 폐타이어 매트와 같은 것이다. ‘폐타이어매트 임시 적치장’이라는 딱지에 ‘추후 항공작업 시 하산 예정’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국립공원 탐방로에 설치된 폐타이어 매트를 철거한다더니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나선 모양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6월 지리산 등 17개 국립공원 탐방로 122개 구간 20.17㎞에 설치된 타이어매트를 자연 친화적인 탐방환경으로 조성하기 위해 2025년까지 전면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타이어매트는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밧줄 형태로 엮어 만든 고무매트다. 겨울철 적설량이 많은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같은 산악형 국립공원에 주로 설치돼 있다. 철 계단이나 목재로 만든 데크 계단 위에 깔려 있다. 겨울철 눈이 쌓이거나 결빙됐을 경우 스틱이나 아이젠으로부터 시설물을 보호할 수 있다. 이슬이나 서리, 물기로 인한 미끄럼 방지역할도 한다. 가파른 철재계단이나 목재계단에 매트가 깔리지 않으면 시설물 훼손도 있겠지만, 악천후 등산객 안전에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시설물이 흉기가 될 수도 있다.

폐타이어 매트는 도입초기 경관을 해친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원재활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악천후 시 다른 매트에 비해 호평을 샀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여름철 고무냄새가 심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민원이 제기된 이후 더 이상 신규로 타이어매트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이미 설치된 곳에 정비요인이 발생하면 철거하는 방식으로 2.27㎞ 구간 타이어매트를 철거한 바 있다. 나름 적절한 폐타이어매트 퇴출방식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국립공원공단은 무슨 연유로 갑자기 내년까지 국립공원에 설치된 모든 폐타이어매트를 서둘러 철거하는 걸까. 국회의원 말 한마디 때문이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여름철 타이어매트에서 냄새가 나며, 타이어에 함유된 발암물질이 인체에 유해하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철거를 주문했다. 이후 공단에서는 당초 기조를 바꿔 올해 8.89㎞, 내년 11.28㎞ 등 내년까지 모두 없애기로 하고 요즘 한창 철거중이다.

인체에 유해하고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철거하고 대체재를 까는 게 맞다. 그러나 설치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멀쩡한 매트를 혈세를 들여서 꼭 서둘러 철거해야 하는지 아쉬움이 든다. 마땅한 대체재도 없다. 당시 노 의원도 대체재로 시범 운용중인 야자매트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야자매트는 재질 특성상 금방 너덜너덜해져 무용지물이 된다. 결빙 시 매우 미끄러워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 제대로 된 유해성 검증절차 없이 국회의원 발언 한마디로 작전하듯 철거하는 것 보다 당초 공단의 일정대로 퇴출시키는 게 더 합리적이다. 생태계 훼손 논리대로라면 국립공원 안에 무분별하게 설치하고 있는 철재난간과 데크길 설치문제부터 손보는 게 순서다. 산에 왔다가 ‘데크만 즈려밟고 간다’는 우스갯 말이 나올 정도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데크길 천국이다. 차제에 국립공원 인공탐방로 설치 전반에 대한 검증과 대안을 심도있게 논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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