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도다완, 국경을 초월한 신뢰와 끊임없는 노력
[기고]이도다완, 국경을 초월한 신뢰와 끊임없는 노력
  • 경남일보
  • 승인 2024.08.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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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츠요시(大塚剛) 주 부산일본국총영사
오스카 츠요시(大塚剛) 주 부산일본국총영사
오스카 츠요시(大塚剛) 주 부산일본국총영사

 

일본에서 ‘이도다완’이라 불리는 다기의 종류가 있다. 이도다완은 15~16세기 한국 남부의 민요(民窯, 서민을 위해 도자기를 굽던 가마)에서 생산되었다. 생산 당시의 사용 용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독특한 특징이 있고 일본에서는 다도정신과 잘 어울리는 다완으로 매우 소중히 다루었다.

그런 이도다완 재현에 인생을 건 한 도예가가 산청요를 운영하는 민영기 선생이다. 그는 197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12대 나카자토 무안(中里無庵) 선생과 13대 나카자토 타로우에몬(中里太 右衛門)선생에게 5년간 사사했다. 일본에서 귀국 후, 산청요를 열어 도예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이도다완 재현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일본 도자기 연구의 대가,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 도쿄국립박물관 도예실장(후에 박물관 차장 역임)과의 만남이었다.

400년 전의 도자기를 재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도자기는 흙과 유약 성분, 가마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인데 이와 관련된 자료가 전해지지 않는다. 더구나 당시의 이도다완은 일본에서 귀하게 보관을 하고있어 쉽게 접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도다완에 관한 정통한 지식과 그 본질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재현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하야시야 선생은 수준 높은 수많은 작품들을 두루 섭렵하고 연구를 거듭해 온 식견가면서 연구자였다. 투박하지만 품격이 있고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독특한 맛이 이도다완에는 있다. 하야시야 선생은 한국인의 감성이 아니고는 당시의 이도다완을 재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하야시야 선생과 민영기 선생이 이도다완 재현에 나선 것은 1990년. 민영기 선생은 물레를 돌려 하루에 300개의 그릇을 빚어, 그 중 10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깨 버렸다. 하야시야 선생은 일 년에 두 번 산청요를 방문해 지도해 주었고, 민영기 선생도 본인의 작품을 들고 매년 수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지도를 받았다. 그때 하야시야 선생을 통해 이도다완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결국 그가 만든 이도다완은 30만 개를 넘었으며 그 과정에서 깨 버린 다완은 트럭 1대 분이나 되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지만, 위대한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엄청난 고통 또한 뒤따른다. 하야시야 선생이 종이 한 장 정도의 미묘한 무게나 두께에 대해 지적해 주면 모양은 맞게 빚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릇에 ‘기(氣)’가 들어 있지 않다는 지적은 너무 어려웠단다. 도대체 ‘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기’를 그릇에 넣을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도공들은 한데 모여 집단생활을 했다. 손위 스승이 늘 곁에 있었기에 도공들의 자녀는 도자기 제작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비록 무지하기는 해도 사물을 보는 안목 만큼은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지식과 욕심이 있으면 순수함이 사라지고, 순수함이 결여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기’란 바로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흘러 작품의 분위기가 바뀌고 품격을 갖추었다. 민영기 선생의 다완을 손에 든 하야시야 선생은 ‘정말로 조선의 이도다완 같다’며 감탄하셨다.

하야시야 세이조 선생은 2017년 4월에 영면하셨다. 두 분이 추구했던 것은 당시 이도다완의 복제품이 아니라 이도다완의 본질을 재현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민영기 선생의 공방은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유약과 시제품들로 가득 차 있고 그는 오늘도 최고의 작품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인의 감성과 일본인의 안목으로 400년 전의 이도다완의 본질이 재현되었다. 민영기 선생의 작품은 국경을 초월한 신뢰와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체다. 한일 간 문화교류 촉진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8월 8일, 민영기 선생은 일본국 외무대신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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