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인생 2막
[여성칼럼]인생 2막
  • 경남일보
  • 승인 2024.08.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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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당신에게 인생 2막이 있습니까? 2막이 있다면 1막이 있었다는 뜻인데 1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잠시 1막을 생각해보시죠. 2막은 1막과 어떻게 다른가요? 2막을 살고 계시나요, 2막을 계획하고 계시나요?

사람마다 인생 2막은 다르다.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지만 보통, 소설을 써도 모자랄 인생 2막이 있고, 그냥 직장 다니는 것을 끝내고 싶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인생 2막이 있다.

소설 같은 인생 2막은 질병이나 사고로 죽다가 살아난 생명형 인생 2막이거나, 파산으로 밑바닥을 쳤다가 다시 재기에 성공한 경제형 인생 2막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저 사람을 만난 것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한 사람과의 인연형 인생 2막도 있다. 물론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이사로, 직업으로, 출세로…. 여러 유형의 인생 2막이 있다.

현대인들이 꿈꾸는 인생 2막은 어떤 유형일까? 퇴직하고 연금 받으며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사는 것. 텃밭 딸린 시골이든 생활이 편리한 도시든, 핵심은 소득 걱정하지 않고 사는 삶인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온전히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기에 충분하다. 매일 똑같이 하고 있는 이 생활을 끝내고 싶은 것은 ‘제발 내일 걱정 안 하고 살고 싶다’는 비명일지 모른다. 불안한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걱정되니 준비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니 멈출 수가 없다. 지쳤지만 내일이 걱정이고, 내일이 걱정이니 준비해야 하고…. 우리의 어제와 오늘은 빙글빙글 돌 뿐이다. 그러니 내일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삶이 얼마나 간절하겠는가. 오늘을 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단 말인가?

오늘을 사는 것이 간절한 바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오늘을 사는 사람을 보면 ‘답이 없다’며 한심해 한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거나 부러워하기는커녕 비난까지 한다. ‘쯧쯧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하는 듯 하지만 눈초리에는 경멸이 묻어있다. 다른 사람이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 마치 나에게 큰 손해라도 끼칠 것같이 절대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자본주의적 사고는 다음 세대의 독립을 인정하는 기준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면 인생 2막일까? 분가가, 취업이, 결혼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다음 세대의 독립은 ‘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소득’을 독립의 기준으로 본다. 성년이 되었더라도, 따로 살게 되었더라도, 취업을 했더라도, 결혼을 했더라도, 내일을 준비하는 소득이 주어지지 않으면 독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내 소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충분하더라도 내일을 위한 준비가 없으면 독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어쩌나 내가 조급하기 때문은 아닐까?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 다음 세대를 보며 내가 불안하고 내가 걱정에 빠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다면 누가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을 살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언제쯤 오늘을 살 수 있을까?

오늘을 산다는 것은 내일을 위한 경제적 마련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오늘이란 풍족한 상태도 오늘이고, 부족한 상태도 오늘이다. 편안한 것도 오늘이고 불편한 것도 오늘이다. 편안하고 풍족한 오늘을 살아야 하고, 그런 내일을 준비하는 것만이 오늘이라면 우리가 바라는 인생 2막은 언제 열릴지 모른다.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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