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진주 천백년사
[경일포럼]진주 천백년사
  • 경남일보
  • 승인 2024.08.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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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모처럼의 진주 발걸음이 있었다. 얼마 전에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나의 발표가 있었는데 문학과 가장 관련이 있는 역사 얘기가 불거져 나왔다. 진주를 두고 흔히 천년 고도(古都)라고 한다. 오래된 옛 도시이다. 천년의 근거를 굳이 따지자면, 기점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까? 진주의 상징적인 축조물인 촉석루가 창건된 해인 1241년을 하나의 설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올해 진주의 도시사(都市史)는 783년이 된다. 천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 대로, 진주가 천년 고도라고 말해지는 근거가 된다. 내가 7년 전에 회갑 기념으로 여름 한 달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에 머물렀다. 에밀리 브론테 소설의 배경이 된 ‘폭풍의 언덕’을 가보기 위해 진주처럼 작은 도시인 요크에서 2박을 했다. 고대로부터 있어 온 성곽도시였다. 지형적으로 천혜의 요새였다. 자기 충족의 경제 활동도 가능한 곳. 외성의 성가퀴를 따라 걸으면, 마치 진주성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자신의 거점을 ‘새로운 요크’라는 의미인 뉴욕을 건설했다. 뉴욕이 200년을 지내오면서 세계적인 중심도시로 발돋움하자 영국의 요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를 두고 ‘오래된 요크’를 의미하는 ‘올드 요크’라는 별칭을 쓰기도 했다.

진주는 전형적인 중세도시다. 고대에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수몰과 함몰의 위험성이 있는 분지여서다. 그런데 이제까지 진주가 300년 동안 백제의 영토라고 알려져 왔다. 진주문화원이 간행한 책에도 버젓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거점은 지금의 경기도와 충남에 지나지 않는다. 한성백제의 근초고왕이 여기저기에 집적댔지만 광개토왕의 영토 확장의 개념과는 결이 달랐다. 아무리 학설이 매력적이어도 고고학적인 증거물이 없으면 ‘꽝’이다. 임나일본부설이 꽝이듯이 말이다. 고대 진주 300년 동안 백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원, 무주, 장수에서 대가야 유물이 적잖이 출토되어 가고 있다. 운봉은 합천 가야, 즉 다라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서북의 가야권이 가로막혀 있는데 진주가 백제의 영토가 될 수 있겠나? 우리 국민들이 전라도가 곧 백제라고 생각하지만, 백제 역사 678년 중에서 전라도 전역이 백제 땅에 편입된 시기는 백년이 되지 않는다. 광주 지역과 영산강 유역은 마한과 마한의 잔존 세력으로서 철기로 경작하거나 무장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진주가 백제의 지배하에, 그것도 300년 동안이나 놓여있었다는 건, 역사지리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은 얘기다.

통일 신라 때 강주니, 청천이니 하는 지명의 진주는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경주에서 부임해온 도독(都督)은 근대의 총독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진주는 경주의 식민지나 다름이 없었다.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면서 진주를 지배한 최초의 인물은 왕봉규였다. 그는 신라 말의 한 해상세력으로 중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분열 시대의 후당으로부터 그는 천주절도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천주는 지금의 의령이다. 견훤 세력이 밀물처럼 밀려들자 의령의 지형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해 거점을 진주로 옮긴다. 말하자면, 진주의 발견은 고지대 가치의 발견에 있다. 이 고지대가 지금의 진주성이다. 왕봉규가 진주를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거점으로 삼은 해는 서기 925년이다. 진주 도시사의 기점이 촉석루를 창건한 해가 아니라 왕봉규가 지방 호족으로서 중앙으로부터 독립한 해여야 한다. 내년이면 천백 주년이 된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이 글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감의 폭이 확산되면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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