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우리시대의 영웅들
[경일시론]우리시대의 영웅들
  • 경남일보
  • 승인 2024.08.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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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논설위원
변옥윤 논설위원


그들은 역시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태극기는 더욱 찬란하게 빛났고 파리의 하늘에 울려퍼진 애국가는 ‘우리의 기상’이었다. 대회 첫날부터 연일 쏟아진 금메달은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계속되고 있는 미증유의 찜통더위와 열대야도 태극전사들의 쾌거 앞에서는 그 위력이 무색해 졌다. 국민들은 우리선수들의 선전하는 모습에 더위를 날려 보내고 일상의 찌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즐겼다. 그들이 있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줄어든 선수단 규모와 여자핸드볼을 제외한 모든 구기종목의 불참은 출발전부터 기대감을 반감시켰다. 금메달 5개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하고있다는 소극적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작 뚜껑이 열린 대회는 연일 낭보로 이어졌고 수많은 인간 승리와 전설을 만들어 내며 드라마 이상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양궁의 전종목 석권은 신화창조였고 MZ세대들의 거침없는 선전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희망차게 만들었다. 사격, 펜싱에서 들려온 승전보는 예상을 뛰어넘은 쾌거여서 축구, 배구, 농구 등 구기종목이 연출하는 역동성을 뛰어넘는 쾌감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끈질긴 승리를 가져온 배드민턴은 새역사 창조라는 신화 외에도 그 경기가 주는 짜릿하고 다이내믹한 경기 내용에 국민들을 매료시키는 덤을 얻는 효과를 거뒀다. 종주국을 뛰어넘은 펜싱은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임을 입증했고 유도와 복싱, 수영 등 종목마다 메달을 획득하는 선전에 우리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대회 중반을 넘기면서 우리가 따낸 금메달은 11개를 넘어섰고 앞으로도 메달 유망종목에서의 선전이 기대되고 있다. 육상, 태권도, 레슬링 등이 열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러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양궁 3관왕이라는 전설을 쓴 김우진은 한국이 양궁의 최강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외국기자의 질문에 ‘부정없이 실력대로 선수를 선발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무한경쟁속에 서로 경쟁하며 실력을 쌓기 때문에 경기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격, 양궁에서 그 진면목을 보았다. 10대의 신예가 실력으로 선발돼 성적을 거둔데서 김우진의 분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건너뛰는 법이 없고 편법도 없으며 그저 먹는 법도 없다. 스포츠는 철저하게 경기룰에 따라 승부를 겨루는 것과 부합한다. 여기에 더 보탠다면 지원체계의 진화를 빼놓을 수 없다. 스포츠의 과학화와 체계적 선수관리, 선수복지 등은 우리의 스포츠가 발전하는 자양분이 됐다. 파리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의 이러한 투자와 과학화 지원체계는 선수들이 만들어낸 성적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선수들의 목적의식이 더욱 뚜렷해져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의식체계이다. 승리도 소중하지만 즐기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부담을 줄이고 경기력 향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숱한 메달이 그들로부터 생산된데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정상의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명예로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상은 외롭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라는 것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남들이 즐길 때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들의 노고에 결과에 관계없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기대이상의 성적과 숱한 휴먼드라마를 쓴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남은 경기에도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파리올림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운 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청량제였다. 그들로 인해 즐거웠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IMF의 지독한 규제와 감시감독에도 이겨낸 것은 박세리와 박찬호라는 불세출의 스포츠스타들의 맹활약에 힘입은 바 컸다. 짜증과 스트레스, 앞이 보이지 않는 난맥의 정치상황에서도 진흙탕 싸움을 멈추지 않는 정치판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것은 스포츠영웅들의 덕분이다. 그들은 분명 우리시대의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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