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태어난 김에 마을일주
[경일춘추]태어난 김에 마을일주
  • 경남일보
  • 승인 2024.08.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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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보 함양백전초등학교 교사
윤상보 함양백전초등학교 교사

 

몇 해 전부터 한 방송사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웹툰작가 ‘기안84’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찾아 떠나는 세계여행기를 담고 있다. 계획도 없이 크로스백 하나 걸치고 떠나 고생을 밥 먹듯이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과 행동은 여행 내내 자유롭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세계 여러 사람들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맺어간다. 미지의 세계에서 ‘기안84’의 자유로움과 순수함은 반복된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듯하다.

따분한 학교의 일상 속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시간은 바로 점심 급식 시간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편식을 하는 어린이들에겐 마냥 자유롭지 못하다. 흰 쌀밥에 콩이 한껏 들어간 어느 급식 시간에 한 아이가 턱을 괴고, 콩을 하나하나 골라낸다. 그러면서 하는 한 마디가 “휴, 학교는 감옥이야. 우리는 이곳에 갇혀있어”였다. 콩밥을 감옥과 연결 지어 비유한 것도 있겠지만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갑갑한 공간인지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 아이들도 미지의 세계에서 자유를 느끼며, 순수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작은 일탈을 꿈꿔볼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는 지구 반대편 저 멀리에만 있지 않았다. 바로 ‘마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산골의 작은 학교에 재학 중인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각자 다른 마을에 혼자 살고 있었고, 마을 간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싶어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착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태어난 김에 마을일주’라는 제목으로 마을 탐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매달 친구들이 사는 마을을 한두 군데 선정해 탐험을 떠나고 있다.

떠나기 전 선생님들은 교실 수업처럼 촘촘한 활동 계획을 세워놓지 않는다. 안전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사전답사를 통해 확인하고, 대강의 활동 목표와 방향만 아이들에게 안내할 뿐이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자유롭게 마을을 휘젓고 다닌다. 지나가시는 할머니께 ‘어디 띠기(댁)신지’ 고향을 여쭙기도 하고, 영상도 함께 찍어보고, 마을 앞 냇가에 들어가 함께 고둥도 잡아보고, 똑똑해지는 우물가에 가서 “더 이상 맞춤법 틀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도 해본다.

마을에 흠뻑 담겨서 하고 싶은 것을 직접 찾아 나서는 아이들에게선 활기가 넘쳐난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찾아온 아이들 덕분에 한껏 살아 움직인다. 대본 없는 다큐를 매달 라이브로 바라보며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무엇을 쉽게 놓치고 있는지 가만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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