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미군정의 재판결과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경일포럼]미군정의 재판결과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7.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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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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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해방 직후인 1946년의 정판사위조지폐사건에 대한 재심 여부 결정을 위한 첫 번째 심리가 열렸다. 신청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재심할지, 안 할지가 정해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당시는 미군정 시기였고, 처음부터 미CIC가 주도한 사건이었다. 물론 재판은 한국인 판사, 검사와 변호사에 의해 진행되었지만 미군정법령 위반사건이다. 취조 책임자는 노덕술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기소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한 사건도 아니다. 그러나 미군정 때 선고된 형량은 정부 수립 후에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계속 형무소에서 징역을 살았다. 제주4·3도 미군정기였다. 다시 말해 미군정 때의 재판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받았고, 정부 수립 후에 미군정은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재심은 미국법원이 아니고, 우리 법원이 해야할 일이다.

78년 전, 이 사건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조선공산당은 합법정당이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해서 입당하고,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의 비타협 독립운동가인 이관술은 역사학도로서 공산주의에 대해 역사연구의 한 방법론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다가 약소민족의 입장에서 우리 사정에 맞는 길을 찾으면 독립을 위한 좋은 이념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하다 해방을 맞았다.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인 이관술은 정판사 사건으로 체포된 지 4개월이 지난 1946년 10월 26일, 최후 진술에서 이숍 우화를 꽤 길게 이야기했다. “어느 봄날에 양 새끼 세 마리가 제 어미에게 아름다운 바깥구경을 갔다 오기를 청하였음에 대하여 어미는 외계의 위험을 말하고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결국 새끼 양의 청에 이기지 못하여 승낙하였다. 새끼 양들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어느 시냇물을 건넜다. 그때 마침 시냇물 상류에서 물을 먹고 있던 사자가 내려와서 새끼 양에게 ‘너희들이 시냇물을 흐렸기 때문에 나는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말에 대하여 새끼 양들은 자세히 생각한 끝에 ‘우리들은 시냇물 하류를 건넜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 물은 언제든지 밑으로 흐른다’고 대답하였다. 사자도 이 대답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또 한 번 꾸며서 ‘너희들은 재작년에 내가 너희들 집 앞을 지날 적에 나에게 욕을 하였는데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 말에 대하여 새끼 양들은 ‘우리는 작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재작년에 당신을 욕할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서도 말문이 막힌 사자는 폐일언하고 ‘나는 너희들을 잡아 먹고 싶다’고 본의를 말하였다”는 우화였다. 미군정을 사자로, 조선을 새끼 양으로 비유했다.

이틀 전의 재판에서도 변호사가 최후 변론을 하려고 할 때 이관술은 이미 유죄판결이 예정되어 있는데 공연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신을 퇴청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이관술은 ‘정판사 사건’을 미군정이 이미 정해놓은 각본에 의해 진행하는 조작이라고 생각했다. 이관술 뿐만 아니었다. 다른 피고인들 역시 최후 진술에서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형을 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무죄를 바란다”고 했다. 유일하게 김창선이 “뚝섬위폐사건은 자신이 한 일이지만 정판사 사건은 고문에 의해 허위 진술한 것이라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여러 지역에서 위조지폐사건이 있었다. 그 중에 뚝섬사건은 수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미수사건으로 끝났는데 유독 정판사 사건은 증거 없이 고문으로 작성된 진술과 증언만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초기부터 조작사건이라는 논란이 심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벗어야 하고, 조작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만약 정부 수립 이전의 재판이라는 이유로 재심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법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불쌍한 어린 양 세 마리의 죽음을 외면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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