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이동면 무림리 247-2 앵강고개(진실동산)→임도→첫 암릉→천년송 바위지대→편백나무지대→복곡고개 임도→순천바위→방송국송신소(산불감시초소)갈림길→옛 활공장→금산 봉수대→흔들바위→상사바위→부소암→상주면 양아리 주차장·서복상(총 13.1㎞, 8시간)
▲앵강고개에는 6·25와 월남참전군인 국가유공자 기념비가 있다. 2012년 남해군수 등 명의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기념탑을 세웠다. ‘군인들의 희생이 바탕이 돼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초입부터 뒷걸음으로 올라야 편할 정도로 경사가 크다. 예사롭지 않은 호구산 마루금의 위용을 지난 뒤에 실감한다.
임도 끝에서 산으로 들어간다. 입구부터 온통 너구리굴, 이 일대가 너구리 집단 서식지임을 알 수 있다. 개과 중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11월∼3월 초순까지 동면한다. 의뭉한 동물이라고 취급받는데 한자로는 세련되게도 수달과 비유되는 ‘산달(山獺)’이라고 쓴다. 요즘 이들의 식량은 버찌, 나무를 타고 올라가 따먹는다. 곳곳에 보이는 배설물에 버찌씨가 절반인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지면 친화적인 소사나무지대를 지나 1시간 만에 하늘이 보이는 너럭바위지대에 선다. 진행해야 할 지맥, 순천바위와 금산의 산그리메가 아스라하다.
빌딩만한 크기의 허연 화강암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숲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거제 앞바다 천년송을 닮은 소나무가 화강암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모습도 보인다.
고도를 높이면 평평한 능선이다. 곧 등장하는 편백나무 군락지는 50여년전 산림당국이 주도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조성한 것이다. 다시 오른다는 게 걱정스러울 만큼 한껏 고도를 낮춘다.
출발 3시간 만에 두 번째 임도, 삼동면과 이동면을 연결하는 복곡고개에 내려선다. 출발지 앵강고개에서 4.9㎞지점, 순천바위까지는 1.7㎞가 남은 지점이다.
복곡고개부터 지맥길이 선명치 않아 독도에 주의해야한다. 길 아닌 숲을 헤쳐가는 바람에 산딸기 가시가 바지를 뚫고 살을 찌른다. 4구간 중 가장 급하고 지루한 길, 호흡이 턱밑까지 차올라 남해의 산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한다.
4시간 만에 금산에 비견하는 풍광을 자랑하는 순천바위, 심한 오름길에 대한 수고를 보상해주는 절경이다. 조망도 좋지만 깔고 앉은 바위들이 명품이다. 산 능선 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바위들은 크기와 높이, 생김새에서 주변을 압도한다.
하얀 수염에 청려장 짚은 신선을 가장 빨리 만나려면 이곳에 와야 할 것이다.
사마천 ‘사기’에 2203년 전 진시황의 명으로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3000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는 서복이 나온다. ‘불로초를 캐서 돌아오겠노라’ 시황제에게 약조한 그는 남해에 온 뒤, 예까지 오르지 않고 산 중턱, 양아리 거북바위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곳에 새길만한 바위가 더 많고 불로초가 많을 지세란 걸 비범한 이도 알 수 있음에도 돌아간 건 의문이다. 시황의 절대권력 누수이거나 그의 충성심이 바닥났을 터이다.
숲이 키높이까지 자란 옛 활공장을 지난다. 과거 행글라이드를 즐기던 이들의 출발 장소로 상주은모래비치로 날아갔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줄사철나무를 지나 금산 정상 봉수대에 닿는다.
‘비단 산’이라는 뜻을 가진 금산(錦山·681m)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내렸다. 금산에서 기도해 조선건국에 성공한 보답으로 이름을 보광산에서 비단산으로 바꿨다 한다.
흔들바위 지나 상사바위까지는 20분이 더 소요된다. 35t이나 되는 흔들바위는 성인 한 사람의 힘에도 움직이는 신기한 바위다. 상사바위는 금산과 보리암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포인트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제1 천하절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양양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국내 3대 관음 성지로 통한다. 보리암의 ‘간성각(看星閣)’ 편액은 별을 보는 누각이란 뜻을 갖고 있다. 별은 노인성(카노푸스)이고 의미는 무병장수이다.
상사바위는 여인을 사랑한 총각이 상사병에 죽었다거나, 높이가 너무 높아 땅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졌다.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지대를 지나, 부소암을 품은 거대한 병풍바위 부소대 옆을 돌아간다.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가 노닌 곳이다. 그는 서복에게 불사약을 찾아오라 명했다. 하지만 그 사이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서복을 쫓아 부소암에 왔다. 그는 산 중턱 양아리 거북바위에다가 ‘서불기례일출’(徐市起禮日出·서복이 뜨는 해를 보고 절하다)이라고 새겼다. 그러나 그의 행적과 석각은 설화일뿐이다. 글씨인지 그림인지도 분명치 않다.
8시간 만에 서복상이 있는 양아리 등산로 입구주차장에서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 한곳에 중국 서복회가 기증한 3t 짜리 서복 석상이 이채롭다. 2014년 남해에서 서복을 주제로, 한·중 학술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는데 당시 중국 학자들이 가져와 기증한 것이다.
최창민·김윤관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