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을 가다[12]고사리밭길(4코스)
남해바래길을 가다[12]고사리밭길(4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9.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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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고사리밭...빼앗긴 마음, 느려지는 걸음
고사리밭길은 국내 최대 고사리 산지답게 온통 고사리로 가득 차 있다. 이 계절, 바래길을 걷는 내내 머리 위와 발 아래 싱그러운 초록의 바다가 펼쳐진다. 생김새 역시 원시적이어서 원초적 초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올망졸망한 언덕 그 사이 사이 길을 걷는 기분은 실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남해바래길을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코스이다.

다랭이논이 과거 억척스런 남해인 삶의 현장이라면 고사리밭은 최근 들어 만들어진 삶의 현장으로, 부지런한 남해인의 태생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0년대 웰빙 식(食)문화를 타고 고사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자 지리·환경적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남해 창선에 고사리 재배가 성업했다. 초창기 산에 대한 무분별한 벌목행위가 빈발해 여러 행정적 조치가 있었으나 당국의 현실적인 판단에 힘입어 고사리재배가 본 궤도에 올랐다. 생업의 터전을 바다에서 산으로 옮긴 케이스이다.

이 코스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는 빼놓을 수없는 명물이다. 바닷가 좁은 면적에 여러 종의 공룡발자국이 동시에 산출돼 당시 공룡의 종류와 생태연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08년 12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특히 사람발자국 모양의 공룡발자국은 연구 대상이다. 국내외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적량마을 출발→천포마을(여튼계)→가인(공룡발자국화석산지)→식포→동대만간이역→창선면 행정복지센터→총거리 15.4㎞ 6시간 내외, 난이도 별 4개

▲적량마을에서 출발한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적량성터를 비롯해 당시 사용했던 약수터 굴항 등 역사문화시설을 볼 수 있다. 마을을 관통해 적량보건소 앞을 지나 뒷산으로 오른다.

입구부터 ‘고사리 채취금지’를 경고하는 각종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인기 있는 코스이지만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구간임을 실감한다. 고사리 채취 기간은 3월 28일부터 6월 24일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재배농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 기간 화·목·토·일요일만 1일 최대 40명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바래길 주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숨이 가쁠 정도의 오르막엘 올라서면 본격적인 고사리밭길이다. 채취 철이 지나 잎이 퍼져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다. 자세히 보면 그래도 늦게 올라오는 새순이 있다. 아이가 주먹을 꼭 쥔 것처럼도 보이고 음계표시를 닮기도 했다. 고사리 어원이 재미있다. 고사리 끝이 원형으로 말려 곡사리라고 부르다가 ‘ㄱ’이 떨어져 고사리가 됐다고 한다.

앞서 간 문부경 바래길 대장의 모습이 고사리밭 속으로 사라졌다. 하얀 비닐 비옷을 입은 채 안개와 함께 자취를 감춘 그 장면이 꿈결 같다. 길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수십차례, 환상적인 주행이 한동안 계속된다.

남해 창선도에서 고사리를 본격적으로 재배한 것은 1980년대, 식포마을 주민이 병해충이 극심한 감농사를 포기하고 고사리를 재배했다고 한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봄에 채취하며 전량 창선농협에서 수매한다.

농협에서는 올해 초 총 93t, 80억원어치의 고사리를 수매했다. 출하농가 수는 1200명이지만 고령화로 인력부족이 심화해 농사를 포기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박세봉 창선농협 조합장은 남해 창선 고사리에 대해 “최고 품질”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중국산 고사리가 연중 4000∼5000t정도 수입되고 있으며, 수백t에 불과한 남해 등 국산 고사리는 ‘금 고사리’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고사리 밭과 함께 바다전망이 확 트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언덕에 키가 큰 수목 몇 그루가 듬성듬성 나 있는 모습은 정원사 누군가가 조경용으로 꾸민 것처럼 이국적이다.

여튼계라는 이름이 붙은 천포마을로 내려선다. 이때부터 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튼계는 마을 앞 바다가 깊지 않고 얕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코스에서 만나는 마을의 이름 ‘고두’는 농토에 농사를 지으며 외롭게 살아가는 빈촌이라 하여 ‘옛고(古)’ ‘섬도(島)’를 써서 ‘고도’라 불렀다. 훗날 어렵게 살던 그날을 잊지 말자고 돌아볼 고(顧) 머리 두(頭)를 써 고두라 고쳐 부른다고 한다. 반면 ‘식포’는 바다와 논밭이 앞뒤로 펼쳐져 있어 해산물 농산물이 풍부한 곳이라는 의미다. 이외 언포는 언덕을 낀 마을, 출발지 적량은 양씨들이 터 잡고 산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가인리 해안에 공룡발자국산지가 이 코스에 재미를 더한다. 데크로를 따라가다 해안에 내려서 경사진 길을 걷다보면 범상치 않은 모습의 공룡발자국이 나타난다. 창선면 가인리의 북쪽 해안에 함안층의 최상부에 해당한다. 암질은 사암으로 암회색을 띠고 있다. 중형 용각류 공룡발자국 화석으로 발자국 22개가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게 찍혀 있다. 발자국의 길이가 55㎝, 폭이 40㎝이며 보폭은 약 200㎝이다.

조각류 공룡발자국 화석 하나는 3개의 발자국이 암반 상단에서 좌로 이동하고, 이보다 서쪽에서 같은 모양의 발자국 4개(2개는 서로 겹침)가 보인다. 아마도 한 마리의 공룡에 의해 찍혀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각류 화석 둘은 발자국 형태가 사람발자국과 비슷해 관심의 대상이 됐던 종이다. 6개의 보행열을 보여주고 있으며 총 45개가 관찰된다. 발자국의 길이는 평균 27㎝이며, 폭이 12㎝이다, 보폭은 평균 50㎝전후이다. 발자국의 모양과 보폭에서 사람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실제 이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사람 발자국 같다고 표기해 놓기도 했다. 1996년 발견 때 익룡의 발자국으로 발표한 적이 있으나 그 후 관련학자들과 수차례 토의한 결과 새로운 종의 수각류일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사실 현실적으로 공룡시대에 사람발자국이 찍힌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화석산지가 끝나면 해안을 따라 유유자적 걸으며 바다의 낭만을 즐길수도 있다. 거북손과 배말도 바지락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낚시 및 채취를 금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자연석 채취도 제한돼 있다.

바래길 ‘별해로’라는 소공원도 볼거리다. 한자 고사리 별, 바다 해(海), 길 로(路), ‘고사리언덕과 바다를 경험하는 여정’이라는 의미다. 이곳에 최고의 고사리 전망대가 있다. 파도와 고사리를 형상화한 소공원에 올라서면 광활한 고사리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와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산과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길과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고사리밭 천지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고사리 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안개비로 인한 다습한 기온 탓이기도 하지만 알싸한 고사리 특유의 향기 때문이다.

남해 건너 지리산 기슭 청학동 시골에서는 고사리와 고비를 ‘꼬사리’ , ‘게비’로 불렀다. 어르신들은 ‘께사리’라고 했다. 그 께사리가 돈이 됐다. 앞뒤 옆집 마을 아주머니들은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망태를 메고 산에 올라 봄 나물을 뜯었다. 점심은 주먹밥에 된장, 즉석에서 곤달비와 참나물 취나물을 뜯어 개울가에 앉아 먹었다. 어르신들은 하루 종일 산을 뒤져 그 고사리와 고비를 땄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온 어른들은 고사리를 가마솥에 삶아낸 뒤 뜨끈한 방 아랫목에 널어 말렸다.

상품이 된 고사리는 마을에 오가는 보따리장사 손에 의해 도회지로 팔려나갔다. 아이들은 고사리 말린 방에서 고사리와 함께 컸다. 바래길 고사리밭길은 창선파출소 앞에서 끝난다.

김윤관기자





 
적량보건소
마치 어린이가 주먹을 꼭 쥔것처럼 생긴 고사리
고사리밭 속으로 연결된 바래길
척박한 산지를 개간해 조성한 고사리밭
이국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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