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광주의 비극 부끄럽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다"
송강호 "광주의 비극 부끄럽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다"
  • 연합뉴스
  • 승인 2017.07.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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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광주의 아픈 비극을 부끄럽지 않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습니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송강호(51)를 만났다.

 멀리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부터 ‘효자동 이발사’(2004), ‘변호인’(2013), ‘밀정’(2016)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에 늘 있었던 송강호이지만,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의 출연 결정은 쉽지 않았다.

 “‘변호인’때와 비슷한 연장선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 부담감과는 좀 다르고요. 실제로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치적으로 작품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제가 책임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돼 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죠. ‘변호인’때도 ‘그 분’의 삶에 누를 끼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 작품도 그런 부담감이 있었어요. 정부가 혹은 어떤 세력이 싫어해서라든지 하는, 그런 부담감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차례 외면했던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점점 더 커졌고, 송강호는 결국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다시 집어 들었다.

 영화 ‘변호인’으로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던 송강호는 “배우로서 대중적으로 편견된 이미지를 가질까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며 “어떤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을 획일화시킨다는 점이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폐해”라고 강조했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에서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역을 맡았다. 아내와 사별하고 11살짜리 딸과 단둘이 사는 만섭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돈을 밝히는 속물이다. 그러나 택시비를 받았으면 목적지까지 손님을 모시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택시의 뒷좌석을 내주는, ‘인간의 도리를 아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밀린 4개월 치 사글세에 해당하는 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신분을 속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고, 그날의 참상을 목격한다.

 송강호는 만섭의 심경 변화를 단 몇 장면만으로도 강렬하게 표현한다.

 극 초반 택시 안에서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신나게 따라부르던 그는 서울로 향하는 길에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차를 다시 광주로 돌린다. 그는 이 장면을 가장 어려웠던 장면으로 꼽았다.

 “운전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감정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촬영 장소가 택시를 몰고 가면 금방 막다른 지점이 나와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그 장면을 찍을 때 ‘제3한강교’ 노랫말에 주목했어요. ‘이 밤이 새면 첫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라는 가사가 광주의 새벽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송강호는 “이 작품에 흐르는 정신은 민주화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작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가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체험한 것처럼, 과거의 아픈 기억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참된 가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1973년식 브리사 택시를 직접 몬다. 그는 “지금은 브리사가 우리나라에 없어서 일본에서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온 귀한 차”라며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 운전에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차 내부가 상당히 좁아 연기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 배우 송강호. /사진제공=쇼박스


 그는 영화 ‘피아니스트’에 출연했던 독일의 명배우 토마스 크레취만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들려줬다.

 “예전에 ‘피아니스트’를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토마스 크레취만과 연기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죠. 저보다는 너덧 살 많은 분인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찍는 배우다 보니 태도가 프로페셔널했죠. 또 지난해 폭염 속에서 촬영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배려해줄 정도로 인품도 훌륭해 감동적이었습니다.”

 만섭은 광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힌츠페터와 ‘콩글리시’로 의사소통을 한다. ‘설국열차’(2013)에서 할리우드 배우들과 연기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송강호는 “영어는 잘하지 못한다”면서도 “그래도 만섭처럼 못하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송강호는 지난해 ‘밀정’으로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영화상 남우 주연상을 받은 뒤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일개 배우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품을 선택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대중적, 상업적인 목적을 달성하면서 관객들이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설국열차’(2013), ‘관상’(2013), ‘변호인’(2013), ‘사도’(2015), ‘밀정’(2016)까지 최근 몇 년간 출연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했다. 배우로서 더 바랄 게 있을까.

 “사회적으로 어떻게 평가받느냐보다는, 좀 더 획기적이면서 신선하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배우로서 태생적인 욕망, 목마름이 있습니다.”

 송강호는 차기작으로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을 촬영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촬영에 들어간다.

 캐스팅 기사가 자주 나오다 보니 ‘열일 하는 배우’로 대중에 각인돼있다. 그러나 그는 “일 년에 한편씩 영화를 찍기 때문에 ‘다작’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하도 저어서 팔이 아플 지경입니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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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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