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6)
“그거야 집에 같이 놀 친구가 없으니까 그랬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잖아. 자기한테 불리해진 분위기를 가장 민감하게 파악하는 게 동물하고 어린애란다.”
“물론 그렇지만 어릴 때 받은 상처는 평생을 좌우한다. 불리한 형편도 함께 견뎌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자라게 하는 게 아이의 인격 형성에 더 중요해. 우리를 봐라.”
“책은 언니 니가 더 많이 봤것지만 아아들 심리는 내가 더 잘 안 알것나. 우리 어릴 때하고 지금 아아들은 다르다. 세 끼 밥 배부르게 먹고 옷 안 벗고 있으모 그만이라고, 요새 아들이 그렇게 맹한 줄 아나?”
“설득하지 못한 탓이지 사람의 기본 심성은 똑 같애. 모두들 지레 오버하고 있어. 우리를 봐라. 혼자 인내하며 감수한다고 자기 고통 한 마디 자식들한테 말하지 않은 엄마 땜에 우리는 얼마나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야 되노. 지금 주영이 귀는 저쪽 사람들 쪽으로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어. 엄마에 대한 인식이 삐뚜로 각인되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될 거야. 늦기 전에 네 입장이나 억울한 경우도 알려주고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시키면 오히려 든든한 동지가 되어 줄 수도 있어. 제가 만약 같이 살기 싫다고 하면 저 좋은 대로 거기 살게 내버려둬도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시도는 해봐야 돼.”
“너 돈 좀 나눠 가졌잖아.”
차암, 저렇게 뭘 몰라, 하는 듯이 흘겨보던 호남이 들고 있던 수건을 양지의 머리맡에다 던지 듯 한 동작으로 탁탁 정리해 놓더니 빈 식수 병을 들고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양지는 설득되지 않는 호남의 복안이 막막했다. 잔가지가 무성하게 웃자라버린 나무는 화목밖에 되지 않는다. 어디선가 읽은 문구가 마음 밑바닥에 어두운 그림자로 깔리며 어린 주영을 싸고돌았다.
올바른 주관이 있을 리 없고 판단능력도 없는 어린것이 어지러운 바람을 혼자 견디다 보면 반드시 성장장애를 입고 만다. 다만 초등학교 기간만이라도 아이는 어미의 사상과 따뜻한 애정을 호흡하면서 자라야 한다. 어릴 때 자리 잡힌 정서의 바른 핵은 외형적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심지를 형성하는 법이다.
잠시 후 호남이 들어서자 양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가슴을 풀지 않고 이 순간을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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