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카프카의 꿈
[경일춘추]카프카의 꿈
  • 경남일보
  • 승인 2024.07.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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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 시인
이필 시인


프란츠 카프카에게 소파는 그의 환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장소였다. 그는 오래전에 이 소파에서 잠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무의식의 침범을 두려워해서 의식적으로 이를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꿈에 매료됐다. 어떤 꿈을 꾸었던 것일까? 죽기 전까지 13년에 걸쳐 적어나간 그의 꿈 기록은 37편이 남아 있다. 꿈에 홀린 자가 불면의 밤과 벌인 투쟁이다. 그의 꿈은 일기와 편지, 소설 등에 흩어져 수시로 형태를 바꿔가며 나타난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자기 혐오는 실은 평생 그의 안에 자리한 어머니에 대한 마조히즘적 애착이었고, 예술가로서의 창작 작업은 어머니를 대체하려고 노력한 결과였을 것이다.

첫 번째 꿈 기록은 ‘움직임과 정지’ 이미지로 가득하다. 미완성 유작 ‘실종자’에서 시간 속으로 돌진하는 기차는 정지해 있는 군중의 이미지와 결합돼 있다. 이는 제논의 역설을 연상시키는데 이를테면 공기 속을 윙윙거리며 날아가는 화살은 어떤 위치에 있든 모든 순간 정지해 있다. 이로 인한 움직임과 변화는 환상이고 불가능하다고 제논은 결론 내렸다. “지금까지 내 삶은 제자리에서의 행진이었고, 기껏해야 충치가 썩어가는 것 같은 발전에 불과했다. 내 삶을 이끌어온 방식은 결코 그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 ‘성’을 쓰기 시작한 1922년 초,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정지된 진행’은 카프카 작품의 특징적인 주제였으며 특히 미완성 작품인 ‘소송’과 ‘성’에서 두드러진다. 절망의 재귀적 운동을 보여준다. 피하면 피할수록 절망의 한가운데로 달려간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이 진행을 중지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이 진행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느냐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은 꿈처럼 흐릿한 미궁의 혼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미궁에서 인간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알 수 없는 우주의 손에 맡겨진다. 카프카 자신도 “인간과 우주의 싸움에서 우주에 베팅하세요”라고 말했듯이 승률이 아주 낮은 도박이다. 인간의 본능, 폭력과 충동은 이 미궁 안에 숨겨진 괴물이다. 이 무시무시한 악몽은 카프카의 문학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카프카스럽다)’라는 형용사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조지프 캠벨은 신화의 기원을 ‘우리가 생각하거나 감히 우리 삶에 통합하지 못한 불편하거나 저항하는 심리적 힘’에서 본다. 이러한 충동은 무의식의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에 맞서기 위해 이 눈부신 비이성을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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