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고양이’라는 녀석
[경일춘추]‘고양이’라는 녀석
  • 경남일보
  • 승인 2024.04.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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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영 작가
유승영 작가


보드라운 털을 가진 너는, 몸 전체가 털이어서 미끌미끌하다. 물컹거리는 것이 싫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자신보다 움직임이 큰 인간을 가장 무서워하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낯선 곳에서는 절대 몸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자기방어에 능한 동물이다.

아이가 새끼고양이를 데리고 왔을 때 “원래 자리에 데려다 놓으라”고 소리지르던 때가 생각난다. 그렇게 고양이와 인연이 시작된 것 같다. 망울망울 작고 작은 눈동자를 들여다본 이상 내다 버릴 수 없는, 인간보다 한없이 연약한 고양이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길고양이의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이란 치열하고도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하루는 산책을 시켜 보겠다고 승용차에 태워 데리고 나갔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산모롱이의 계곡 옆에서 바람을 쐬일 요량으로 차창 문을 내렸다. 하지만 고양이는 순식간에 뛰쳐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겁을 잔뜩 먹고는 문을 여는 순간 무서움에 후다닥 뛰쳐나간 것이다. 고양이는 어딘가에 자신의 몸을 단단히 숨기고 있을 것인데, 해가 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늦은 밤 다시 그곳에 가서 이름을 불렀고, 날마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집에서 승용차로 20여 분의 거리 제법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언제라도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환상으로 잠을 설쳤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도 고양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겁이 많은 녀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고양이가 인간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 이집트인이 야생고양이를 길들이기 시작하면서이다. 최초로 고양이가 발견된 곳은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인도이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 조각. 고양이의 미라까지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고양이는 그들의 조상일지도 모르겠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고도 한다. 고양이가 사람의 시체를 뛰어넘으면 시체가 움직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험한 동물이라고 여겼다. 가야토기에 새겨진 고양이의 모습과 신라 왕궁 주변에서 발견된 고양이 뼈로 짐작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고양이가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녀석은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춥디추운 12월 31일,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마당 데크 위에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사뿐히 앉아있다. 3㎞가 넘는 거리를 어떻게 찾아온 걸까. 하나님 말고는 그 비밀을 아무도 모른다. 동그랗고 작은 몸으로 조금씩 길을 밀면서 왔을 것이다. 풍찬노숙, 모든 것을 걸고 온 몸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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