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현역가왕
[경일춘추]현역가왕
  • 경남일보
  • 승인 2024.04.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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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수필가
김유진 수필가


대중가요는 서민들 마음의 치료제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도 마음을 치유하는 노랫말에 위안을 얻는다. 어느 때는 쭉 뻗는 고음에 청량감이 솟고 어떨 때는 애잔함이 구슬픔에 눈물짓게 만든다. 누구나 살면서 애창곡 하나씩은 마음에 품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 가수에게 마음을 뺏긴 적이 있다. 자그마한 키에 보이시한 얼굴, 목소리는 가성과 진성을 자유롭게 발성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삼 년 전 한 방송국 노래경연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나는 반해 버렸다. 이름과 얼굴은 신인 같지만 십 년이 넘도록 노래를 했다는 경력이 소개됐다. 그녀는 경연에서 아깝게 일찍 탈락했다.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때부터 그녀의 팬이 됐고 내 마음 속 깊이 자리를 잡게 됐다.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자리에만 박수갈채를 보낸다. 패자의 마음을 보듬어 주며 승리를 하지 못한 사람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

텔레비전 안내 방송에 현역가수만 경연하는 ‘현역가왕’ 이란 타이틀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재미가 무척 쏠쏠했다.

아, 이게 웬일인가. 삼 년 전에 내 마음을 빼앗아 간 그녀, 당당하게 다시 무대에 섰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을 했다. 어느새 그녀의 팬이 돼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그녀도 피 토하듯 노래를 했다. 경연이 거듭될수록 초조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래서 대중가수의 팬덤이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더 늦기 전에 팬덤 속에 한 번쯤 놀아보자.

그녀가 삼 년 전 노래 하나로 나를 반하게 만든 ‘밤열차’의 노랫말인 ‘기적소리 울음소리’가 내 고막을 흔들었다. 이번 현역 가왕에서 ‘옹이’란 노랫말도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 창자를 움켜쥐듯 토하는 가사에 눈물이 났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옹이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녀는 결승전에서 2등의 영광을 안았다. 나는 그때도 변함없이 박수를 보냈다. 저 작은 체구에서 옹골찬 가성이 나온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다.

그 가수 이름은 ‘마이진’이다. 본명은 우연하게 내 동생 이름과 같아서 내가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최종 결승은 차마 볼 수가 없어 재방송을 보기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켠 내 눈이 번쩍 띄었다. 그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순위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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