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송년회의 계절이다. 지난 주 15년 된 모임의 송년회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송년 모임이 총총 잡혀 있다. 모임의 말미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한 해를 보내는 간단한 소회를 말할 때 멤버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간다는 말부터 꺼낸다. 그도 그럴 것이 코비드19가 복병처럼 불쑥 나타나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던 기간은 3년 여의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것 같은 공허감을 맛보게 했다. 그 사이 우리들은 조금씩 노화해가는 심신의 상태를 각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동동거리며 바쁘게 살아가든 여유를 갖고 느리게 살아가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카르페 디엠!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라틴어 시의 한 구절로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알려준 이후유명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경구이다. 나는 이 말을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란 새 날에 감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삶이 무엇이냐는 거대한 담론은 차치하고 매 순간의 사소함마저 즐기는 것이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박한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고, 소소한 일상들의 소중함에 눈을 떠가니 다행스럽다.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1년이 되고, 그 시간들이 모여 우리 개인의 인생이 되고, 또 그것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 보편의 진리 앞에서 매 순간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즐기려고 한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었던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풍경은 겨울이 되면서 빛깔을 잃은 무채색 풍경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색을 죄다 뺀 담담한 무채색 겨울 풍경은 삭막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겸손함을 느끼게 한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밖으로 나가 사위를 둘러보자.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벗은 나무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들여다보고 쨍한 영하의 추위도 느껴보자. 살아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오늘이 아니던가?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12월! 나의 시선에 머무는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시간에 몰입하고 감사를 느끼고 싶다. 회색 도시 위로 눈이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오늘 이 말을 읊조리며 나는 나의 일상 속으로 조용히 스미어든다.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