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학부모교육 강사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수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내 집에도 방과 마루에 산수화가 걸려있다. 아마 우리가 자연에서 왔고 자연 속에 살고 싶은 현실의 욕망을 그림 속에서나마 찾으려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좋아하는 TV프로 중 하나가 ‘나는 자연인이다’ 이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잘 나가다 종국에는 건강을 잃거나 재물을 잃고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그 아픔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려고 들어왔단다. 침정신정(沈靜神定)이라 차분히 내려놓고 가라앉히면 마음이 고요하니 그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순수하고 밝다. 아마 욕심을 비운 그 자리에 지족(知足)의 기쁨을 채웠기에 그렇지 않을까? 고요함은 산속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음을 그들은 체험 속에서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탐욕스럽게 재물을 모으는 자에게 “당신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애를 씁니까? 제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아들은요? 자기의 자식을 위하겠죠. 그렇게 끝없이 되풀이해도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은 없군요” 하며 탄식한다. 세재비아(世財非我)라, 세상의 재물은 나의 재물이 아니다. 손을 거쳐 가는 것일 뿐이다. 나의 삶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다. 빗나간 자식 사랑으로 이미 국민들의 지탄을 받은 사람들이 어디 하나둘인가? 깨달음은 항상 늦게 도착하니 지만계영(持滿戒盈)이라, 항상 가득참을 경계해야 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가득참을 유지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비우는 것”이라 하고 덜어내는 방법을 묻자 높아지면 내려오고 가득 차면 비우고 부유하면 검약하고 귀해지면 낮추는 것이라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지덕(至德)을 갖춘 사람뿐이니 더 채우려 들지 말고 더 덜어내라 설파한다. 공자가 노환공의 사당을 구경하다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로 서는 비스듬히 누운 그릇 유좌지기(宥坐之器)를 보고는 “아! 가득 차고 엎어지지 않을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며 넘치는 욕심을 탄식한다. 계영배와 괄호배를 항상 곁에 두고 넘침과 과욕을 경계하며 신독(愼獨)의 삶을 살아간 옛 성현들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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