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구 건축사
벼가 익어가면서 황금들녘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가을이다. 황매산에는 빛나는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며 ‘사각사각’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소설가 박경리는 ‘토지’의 서문에서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중략)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라고 했다.
위대한 소설가이면서도 자신의 작품과 글의 근원에 대한 회의로 오랫동안 방황을 했고 비로소 복귀를 결정하면서 쓴 글이다.
몇 해 전에야 비로소 ‘김약국의 딸들’을 완독하고 “우리에게 이런 훌륭한 작가가 계셨구나”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항상 깨달음은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남긴다.
올라가면서 ‘벽체는 타일 마감, 도로 쪽으로 창을 계획하고 벽체는 상큼한 페인트 마감하면 훨씬 좋겠는데 말이야’ 내심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업은 속일수 없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물탱크에 물이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수도계량기를 닫고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헤어지며 손에 들고 있던 예쁜 수건을 건네줬다.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박경리의 모습이 반추됐다. 그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주택을 마련했다. 지혜롭게 사는 그의 모습에서 박경리의 삶이 그려졌다.
건축사들은 건축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한다. 전문 건축인이 아닌 시행사가 ‘건축은 경제성이 전부인 것 같아요’라며 푸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아니다. 건축은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근원은 우리가 사는 공간이며 삶이다. 인류가 바다에서 기인했다고 해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듯, 건축의 근원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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