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7)
  • 경남일보
  • 승인 2023.09.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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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후문학파와 노령시학(2)
진주출신 후문학파 성종화는 현재 부산에서 살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진주 대평면에서 성장했다. 학생문단에서 이름을 떨쳤던 그는 50여년 만에 문단의 일각으로 돌아왔다. 성 시인은 올배기 시인이었다. 진주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4년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차하 입상을 했고 이듬해 1955년 2학년 때 같은 백일장에서 당당 일반부 통합 장원을 차지했다. 그 무렵 성종화는 『학원』 『학생계』 등에서 작품을 게재하는 이른바 학생문단의 총아였다.

그는 평생 직장인 법무사직에 충실하다가 52년 후 부산지역 『시와 수필』에 재등단하는 기회를 가져 그 긴 공백을 메꾸기 시작했다. 50여년의 비문학적 비예능적 삶을 어찌 살아내었을까? 그리고 그 딱딱한 법률적 생활로 세상을 닥딱히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50여년 공백으로 그 처음의 예눙적 세계를 다지고 다진 셈이다. 그런 뒤 다시 그 꿈꾸던 상상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문학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 이전에 갈고 닦았던 청록파, 혹은 박월적 서정을 낯익히기 시작했다.

“깊은 산 계곡/옹달샘에// 파란 하늘이 흰구름 헹궈서/ 햇볕 바른 가지 끝에 말리고// 산노루는/ 양지쪽 돋은 봄풀을 뜯는다// 산새 한 마리/ 짝짓기 하려고 둥지를 트는가// 산에는/ 봄날 긴 하루해”(시 「봄산」 전문)

딱 박목월이 쓰던 ‘봄산’ ‘옹달샘‘ ’하늘‘ ’흰구름‘을 헛간에 버려두었던 연장처럼 끄집어낸다. 그리고 탈탈 먼지를 털고 신춘 새날을 축복하듯 기억의 베틀에 앉아 비단 한 필 짜듯이 옷감을 짜낸다. 묵혀둔 언어, 묵혀둔 베틀이지만 복원의 기쁨은 얼마나 신기하고 가슴 떨리는 일이었을까? 이리하여 그는 고교시잘의 전성시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는 봄산 진달래꽃으로 잃었던 자기 목소리를 찾아내었다.

“신불산 공룡능선 길// 바위틈 사이 사이/진달래꽃 피어서 발걸음 세우네//꽃잎 따 입에 넣고/다시 따 입에 넣으니//진달래 꽃잎으로/물이 든 이 입술//그리운 내 님의 볼에다/연지로 찍어서// 그 흔적 지우지 아니하고/ 무덤까지 남겨 가게 할까”

이 정도면 홀로 서는 후문학의 길 닦아내고 윤끼 번지르르 흐르게 한 셈이다. 놀라운 복귀의 구음이거나 날개죽지 퍼더득이며 펴는 소리일 것이다. 성종화는 이제 득음의 경지로 간 것일까. 「이 가을에 내가 고향에 가서」를 쓴다. 지금까지의 시와는 한 술 더 뜨는 이야기이다.

“이 가을에 고향에 가서 따올 과일은/ 세월이라는 열매다// 모두가 다 떠나고 없는 그 고향에서/ 혼자 익어서 자주빛깔이 도는 그 과일은/슬픔이라는 열매다// 엣날의 마당 한 귀퉁이에 / 오늘 나처럼 등이 굽은 나무에 열린 과일은/무상(無常)이라는 열매다” 고향은 세월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고 그리고 無常을 말하는데 집안에 있는 과일로서 설명한다. 언젠가는 그 나무마저 베어져 버릴 것이라는 고향부재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늙었다는 것이다.

앞에 쓴 시편들보다는 고향의 이미지를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발전이다.

정봉화 수필가. 그의 체험의 알파요 오메가는 군인정신에서 오는 것일 터이다. 『남강은 흐른다』에 실린 「육사에도 뒷문이 있더냐」, 「내가 모신 윤필용 장군」,「그 겨울에의 추억」, 「눈 폭탄이 쏟아지던 날」 등이 오로지 군대와 병영생활과 관련되는 작품들이다. 뜻하지 않게 병영을 떠나야 한 이후 천신만고 끝에 이루는 기업가 생은 물론 그것대로 독자적인 가치와 세계를 갖는 것이지만 군대에서의 삶이 좌절의 강을 건너선 것이므로 좌절 다음의 창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육사에도 뒷문이 있더냐」라는 첫작품은 제목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화자는 1958년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1차 합격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자신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억울해 교장 앞으로 살펴봐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일반대학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육사 교무처에 근무하는 병장 한 사람이 1차 합격 통지서를 뒤늦게 가지고 와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교무처에서는 수험생의 민원을 검토하던 중 3사람의 수학 답안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어 발칵 뒤집히고 다시 사정한 결과 3인 모두 1차 합격권 안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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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환 2023-09-12 09:45:12
바목월적--- 박목월적 , 옹달생--옹달샘 으로 고쳐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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