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탄생, 뒷 이야기를 들여다보다
작품의 탄생, 뒷 이야기를 들여다보다
  • 백지영
  • 승인 2023.07.27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하)
실험미술 1세대 이건용 연보·영상 통해 가변성 담아
리얼리즘 회화가 방정아에 영향 준 음악·영화 공개
경남도립미술관 동시대 주제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은 참여 작가·작품에 대한 흥미는 물론 전시 준비 과정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시다.

전시의 시작은 지난해 개막했던 지역 작가 조명전 ‘백순공:선(線)의 흔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시 준비 과정에서 마주한 백 작가의 생전 작업 노트에는 작가가 고군분투했던 기록이 빼곡했다.

이를 보여주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가의 작품과 함께 작업노트를 전시했는데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작품만으로도 좋지만, 작가 노트와 함께 보니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해 작품을 다시 보게 됐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아카이브 리듬’ 전시에 앞서 ‘백순공:선(線)의 흔적’展을 맡았던 이미영 학예연구사는 “당시 관객 반응을 보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작가노트를 통해 바라보는 전시를 다음에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국적으로 작품과 작가노트를 함께 선보이는 아카이브 전시가 유행처럼 번졌던 만큼, 그와는 다른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아카이브 자체에 더 집중하고, 미술 아카이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도적인 문제를 짚기로 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3명의 작가마다 다른 아카이브 관점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1층 안규철 작가 전시 공간에서 개념 미술 아카이브의 한 형태를 제안했다면, 2층의 두 전시실에서는 실험 미술과 리얼리즘 미술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이건용=2층 2전시실에 마련된 한국 실험미술 1세대인 이건용 작가의 전시 공간은 독특하다.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일종의 작품 활동 연보가 전시실 큰 면에 가득 펼쳐져 관객을 압도한다. 조금 눈을 돌리면 이건용 작가의 퍼포먼스(행위)가 담긴 초대형 영상이 재생되고, 영상 속 퍼포먼스의 결과물로 보이는 회화 작품 등이 곁에 걸려있다.

이건용 작가는 한국 행위 미술의 시작과 발전의 궤적을 함께 해온 원로 작가로, 1975년 자기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 작품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논리적 조건을 강조하는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작가가 ‘이벤트-로지컬’(사건-논리적)이라고 칭하는, 단어만으로는 모순적인 느낌을 주는 퍼포먼스 영상·사진과 회화 작품 등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신체드로잉’ 3종이다. 등을 캔버스에 붙이고 선 채로, 양팔을 휘둘러 등 뒤의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등의 퍼포먼스다.

전시에서는 ‘이벤트-로지컬’ 퍼포먼스에 대한 VHS(가정용 비디오 방식)·사진·드로잉·작가노트 등 100건이 넘는 기록이 퍼포먼스와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실험미술의 가변성과 즉흥성을 어떻게 기록할지 답을 찾아나간다.

◇방정아=2층 3전시실로 들어서면 방정아 작가의 초대형 회화 작품 ‘주욱 미끄러지는거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립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습지를 좋아하는 작가가 인근 주남저수지를 방문했다가, 오리 무리의 정중동에 깊은 인상을 받고 제작한 올해 신작이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방정아 작가는 일상과 정치사회, 환경 등 다차원 세계를 다뤄온 민중미술 2세대 작가로, 리얼리즘 회화와 여성주의 작품 등을 선보여 왔다.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인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는 주한미군의 부산항 8부두 생화학 실험 소식을 접한 뒤 작가만의 방식으로 풀어본 작품이다.

“종속적인 한미 관계, 그리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인공 정원에 주피터(로마신화의 최고 신)를 연상케 하는 노인을 앉혀뒀는데, 늙어서 힘이 없는 모양새지만 그래도 군림하는 듯한 모습이죠. 그 주변에 위험을 감지한 듯한 사람들이 그를 의식하며 앉거나 선 모습에서 긴장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방정아 작가)

방 작가의 작품은 동시대 미술의 한 형태를 띠면서도 대부분의 회화 작가를 대변한다. 시대와 역사·문화 등을 민감하게 피부로 흡수하고, 이를 작품에 투영한다.

전시는 작가가 작품 활동 과정에서 참조하거나 영향을 받은 자료들이 ‘미술 아카이브’로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에 주목했다. 작품과 아이디어 스케치·메모는 물론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도서·음악·영화 등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실 입구에는 방 작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어머니의 회화 작품도 여러 점 배치돼 있다..

전시는 수많은 작가가 작품 활동 과정에서 참조하는 다양한 사안들이 아카이브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을 드러내는 게 작품의 아우라에 변화를 불러오진 않는지 등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이미영 학예연구사가 한국 실험미술 1세대 이건용 작가의 전시 공간에서 아카이브 주안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건용 작가 전시 공간.
이건용 작가 아카이브 공간.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방정아 작가가 자신의 작품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방정아 작가가 자신의 작품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정아 작가 전시 공간.
방정아 작가 아카이브 공간.
방정아 작가가 작품 활동 과정에서 참조한 아트록밴드 ‘토다’의 음악을 소개하는 공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