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97]
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97]
  • 경남일보
  • 승인 2023.04.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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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비임비, 산득하다
지난 이레끝(주말)부터 엊그제 아침까지 꽃샘추위가 이어졌습니다. 곳에 따라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20도 넘게 난 곳도 있었다고 하고 얼음이 얼고 서리가 내린 곳도 있었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꽃샘추위를 나타낼 때 쓰기 좋은 말이 들어 있는 송골매가 부른 ‘하늘나라 우리 님’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토박이말 두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노래의 처음에 “하늘은 매서웁고 흰 눈이 가득한 날”이리고 ‘눈’이 나와서 요즘 같은 봄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꽃샘추위와 이어지는 말이 나온 답니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옛날 시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노랫말에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뷔님뷔 님뷔곰뷔 천방지방 지방천방”이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여기 나온 ‘곰뷔님뷔’는 오늘날 말집(사전)에서는 ‘곰비임비’라고 하는데 ‘몬(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이어서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차곡차곡’이라는 말이나 ‘자꾸자꾸’라는 말과는 그 느낌이 좀 다른 말이지요. 옛 시조에 나온 말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불러 주니까 오늘날 우리가 알게 된 값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 곰비임비 일어난다”, “목이 타서 곰비임비 물을 들이켰다”처럼 쓸 수 있겠습니다.

‘곰비임비’에 이어 꽃샘추위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이 들어 있는 곳은 노래 끝에 나오는데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산득산득하더라”입니다. 여기에 있는 ‘산득하다’가 ‘꽃샘추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 가운데 이 말의 뜻을 똑똑히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랫말 속에 나오긴 하지만 나날살이에서 자주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산득하다’는 ‘갑자기 사늘한 느낌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섬뜩하다’가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는 뜻이니까 ‘섬뜩하다’보다는 훨씬 작은 ‘사늘한 느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큰말로 선득하다가 있고 산득하다보다 조금 센말로 ‘산뜩하다’는 말도 있답니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여름인데도 불어오는 바람이 산득했다”와 같은 보기가 있습니다. 노랫말 앞에 눈이 나왔는데 그 눈과 이어서 생각해 보면 이 말이 들어간 까닭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 때 느끼게 되는 그 사늘한 느낌을 나타내기에 알맞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갑자기 사늘한 느낌이 드실 때 ‘산득하다’를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드실 때’는 ‘선득하다’를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사늘하다’는 말과 ‘서늘하다’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 아신다면 ‘산득하다’와 ‘선득하다’의 다름도 바로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갑자기 놀라서 마음에 사늘한 느낌이 있을 때’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노래를 들을 때는 흘려들어서 무슨 낱말인지 똑똑히 모르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새겨보면 좋은 말이 더러 있습니다. 즐겨 듣는 노래 속에 들어 있는 말도 알고 있으면 나날살이에서 알맞게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토박이말을 잘 살려 지은 노랫말로 된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고 또 그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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