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 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어 계절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다.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온 산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고 있지만 머지않아 낙엽으로 뒹굴 채비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서글퍼지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이럴 때는 최백호 가수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라는 노래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한번쯤 떠올리게 된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고 하면서 어쨌든 가을에는 따나지 말라고 애절하게 부르짓고 있다. 최백호 노래를 들으면 최백호는 항상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고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유난히도 생각나는 가수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 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하고 있다. 희망은 반드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탄생하니 외로움을 견뎌 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여러 일들 중 외로움을 견디는 것 만큼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시 역시 우리를 애잔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가을은 깊어만 가고 우리의 마음도 가을에 빠져 들어가고 만다. 그래서 때론 가을을 타기도 하고 우수에 젖기도 한다. 또 그래서 가을인가보다.
올 여름은 그 어느 여름보다 유난히 더웠다. 그럴 때는 차라리 추운 겨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살을 에는 추운 겨울이 오면 또 차라리 더운 여름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의 심리는 상황에 따라 변하여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는 ‘인간이 가장 간사한 동물이구나’하고 생각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의 대화 중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죽겠다’는 말이다. 더우면 더워 죽겠다. 추우면 추워 죽겠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파 죽겠다. 배가 부르면 배가 불러 죽겠다. ‘온통 죽겠다’다. 이러한 것도 너무 간사한 마음에서 쉽게 내뱉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를 갖고 싶은 것도 막상 소유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재차 찾거나 바꾸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을 바꾸고 나서도 만족보다는 더 나은 것에 눈길이 가곤 한다.
간사함을 말하자면 정치인들은 간사함의 극치다. 의리라는 것은 없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은 동지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익이 될 사람과 나에게 별 이익이 되지 않은 사람을 저울질하고 그러한 간사함은 남에게 탄로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로 끝없이 포장하려 한다. 요즈음 대한민국을 블랙홀에 빠트리고 있는 대장동 사태를 보면서 이게 나라다운 나라냐며 울분을 터뜨리게 만든다. 주범은 찾지 못하고 공범만 찾아내고 있다. 전과 4범이 일국의 대통령 되겠다고 핏대를 세우는 형국이다. 정치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가 먼저 정직하고 믿음과 신뢰가 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기본 상식이다.
이럴 때 유교의 핵심 사상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한번 소환해 보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위정자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리더가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로 정치를 한다면 국민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의 원리는 간단하다. 모든 것이 기본에서 성패가 갈리게 된다. 비단 정치 뿐만 아니라 스포츠, 예술, 공부, 인간 관계에 이르기까지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그래서 정치도 기본이 상식이다 라는 것이다.
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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