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미소라 히바리, 이미자, 백영호
[아침논단]미소라 히바리, 이미자, 백영호
  • 경남일보
  • 승인 2018.10.11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임식 LH 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미소라 히바리(美空雲雀, 1937~1989). 전후 일본인들의 영혼을 달래준 영원한 국민가수다. 누적 음반판매량이 8000만장에 이른다는 비공식통계가 있을 정도로 20세기 일본 대중음악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가난한 생선가게 딸로 태어났지만 음악재능을 간파한 어머니의 지원으로 8살에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40여년간 엔카(演歌)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마지막 피폐해진 육신을 술, 담배로 달래다 너무나 아까운 54세에 폐렴으로 세상을 떴다. 장례식은 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일본 전 방송사가 생중계했다. 일본 정부는 그의 사후에 일본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공영방송 NHK는 1989년 1월에 발표하여 그의 마지막 곡이 된 ‘냇물이 흐르는 것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를 일본 명곡 1위로 선정했다. 이 곡은 이후 가수 이화숙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다.

그의 부친이 경남 김해 태생 한국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재한일본인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그는 연예활동 내내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공연이 평생소원이라고도 했다. 1987년 8월 세종문화회관 ‘미소라 히바리 한국 콘서트’가 무산되고 88올림픽 전야제인 ‘제1회 국제 아시아 가요제전’에 일본대표 참가 역시 좌절되었다. 한국공연을 위해 준비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도라지타령’ 등은 그를 괴롭힌 병마 앞에서 빛을 잃었다.

이미자(1941~). 서울 용산에서 태어난 이미자는 한국가요계의 여제, 엘레지의 여왕, 트로트 끝판왕 등 많은 헌사가 따른다. 가수 김도향은 그를 ‘한국 대중가요의 국모’라고 극찬했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1938년생 패티김과 함께 한 때 가요계를 이끌었다. 패티김이 스탠다드 팝을 구사하며 우아하고 도시적인 감성을 노래할 때 이미자는 고향, 시골의 애틋한 정서를 구성진 목소리에 담아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보수적인 여성성을 노래하곤 해서 지금 정서로는 납득되지 않는 면도 있다.

이미자는 많은 점에서 ‘한국의 미소라 히바리’라 할 수 있다. 미소라가 일본인의 지치고 고독한 영혼을 달랬다면 이미자는 60~70년대 급격한 도시화, 경제발전 과정에서 희생되던 서민의 아픔을 달랬다고 할 수 있다. 이미자는 미소라의 엔카와 유사한 트로트를 비슷한 호소력으로 불렀다. 미소라의 마지막 곡 ‘냇물이 흐르는 것처럼’은 ‘모르게 모르게 걸어온 가늘고 긴 이 길’로 시작한다. 이미자 데뷔 30년 기념음반에 실린 ‘노래는 나의 인생’은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 보면은 외로운 길’로 시작한다.

이미자는 작곡가 박춘석과 콤비를 이뤘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등을 같이 했다. 이미자의 2000여곡 중 3분의 1이 박춘석 작곡이다. 그러나 가수 이미자를 여왕으로 등극시킨 결정적인 명곡은 박춘석을 만나기 전 부른 ‘동백아가씨’다. 부산 출신 콤비 한산도, 백영호의 작사, 작곡으로 1964년 개봉한 영화 ‘동백아가씨’ 주제가로 발표된 것이다. 이미자는 방음장치를 한 집안에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찬물에 발을 담가가며 이 노래를 연습했다. 백영호는 고향 부산의 정서를 단 두 시간에 선율에 녹였다고 했다. 실제 영화의 첫 촬영도 다대포 해변에서 했다. 노래 제목은 영화에 나오는 술집 ‘동백 바(bar)’에서 나왔다.

국내 최초 음반판매 100만장을 돌파하고 영화를 재개봉하게 만들었다. 작곡자는 생전 여러 곳에서 동백아가씨 노래비 건립을 제의해도 부산 동백섬 외는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나온 지 2년만인 1966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1987년에 해금된 이후에도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6년 문화방송 조사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요 100선’에서 당시 힛트곡 ‘어머나’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백영호(1920~2003)는 이외에 ‘여자의 일생’,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를 이미자에게 선사했다. ‘추억의 소야곡’, ‘해운대 엘레지’, ‘비내리는 명동’, ‘추풍령’, ‘동숙의 노래’ 등 주옥같은 곡을 남긴 백영호. ‘삼천포아가씨’와 결혼한 그는 사천 정동면에서 영면하고 있다. 지난 6월23일 제1회 백영호가요제가 열렸고 그의 기념관이 진주 상대동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