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흐 이중섭
지명주(장유중학교 교사)
한국의 고흐 이중섭
지명주(장유중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3.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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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주

이중섭은 1916년 4월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과를 주면 우선 그림을 그리고 나서 먹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오산 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민족 의식에 눈을 떴고 오산 학교 시절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밖에 모르던 이중섭에게 일본 유학시절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랑에 빠져 마사코가 조선으로 건너와 이남덕으로 이름을 바꾸고 1945년 결혼을 했다. 얼마 후 6·25 전쟁으로 전국을 전전하는 피난생활을 했고,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을 와 두어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정을 나누고 살았으나 극심한 생활고로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가게 된다.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한 이중섭에게는 크나큰 아픔이었다. 가족과 떨어진 후 늘 혼자 지내는 힘겨운 생활 중에서도 아내와 두 아들을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을 이어가며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이 당시 그려진 그의 작품들 속 인물들은 행복해 보인다. 네 식구가 두어 평도 되지 않는 단칸방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과 함께 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으며, 그 행복감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후 그는 그림재료를 살 돈이 없어 양담배 속에 있는 은박지를 이용해 그릴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에 시달렸다. 남북전쟁으로 생이별을 한 후 그는 도쿄에서 단 5일의 해후를 끝으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부인과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평생 엽서에 그림과 글을 써보내긴 했지만 그는 가족과 재회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질환까지 앓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기도 했으나 1956년 41세의 이른 나이에 간염과 영양실조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친구들이 찾아왔을 땐 시체와 밀린 병원비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을 소재로 따뜻한 그림을 남기고 간 한국의 고흐 이중섭! 그의 예술세계를 이끌고 있는 것은 행복한 가정생활, 가족과의 이별, 그들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작품 속에 자신의 순간순간의 감정과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보면 이중섭은 삶과 예술이 분명 일치했던 사람이다.

 

지명주(장유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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