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데에 노을만한 것이 없다. 아침을 맞이하는 장쾌한 아침놀도 있겠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어둠을 향해 가는 붉은색 저녁노을은 사람의 마음에 강하게 작용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떤 것일까. 사라져가는 것 앞에서 장차 사라질 자가 느끼는 삶의 허무일 수도 있겠고, 삶 자체가 가진 본질적 애달픔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마지막 정열의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는, 최선을 다한 자의 엄숙한 최후를 목도하는 기분이랄까.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 새로운 상황으로 나선다는 변화를 실감나게 하는 게 노을이다.
하지만 이 노을도 날마다 본다면 어떨까. 예컨대 집을 서향의 바닷가쯤에 짓고 날마다 노을을 본다면.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어린 왕자가 그의 작은 별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 의자를 몇 걸음씩 이동시켜 가면서 하루에 마흔 번도 넘게 감상하는 그 노을 같으면. 날마다 본다면 그리고 자꾸 본다면 그 감동은 차츰 무디어 가지 않을까.
변화를 대하는 마음도 이와 같으리라. 모든 것은 변하고 있는데 그 변하는 것이 익숙한 때문에, 날마다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변화는 우리의 관심 밖에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흡입하는 이 공기는 벌써 오늘의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강물은 바다는 어제의 것이 아니다. 어제의 것은 벌써 우리 곁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제에 비해 하루를 더 살았다. 안됐지만 하루를 더 늙었다. 그런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에 둔감한 듯하다. 심지어는 모든 것이 어제와 같다고 내심 투덜대기도 하는 것 같다. 이래서야 세상이 갑갑하기만 할 뿐이다. 세상 모든 것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그 변화에 나 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나이가 들면 그에 맞게 철이 들어야 한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을 일러 철부지라 한다. 나이 들어 철부지란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 그 사람들은 여건이 허락된다면 당장 노을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 변화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 변하는 것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 종말과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아야 한다.
정삼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