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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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2. 신풍인가 광풍인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조운의 집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바로 시민이 보낸 군사였다.

“아, 판관께서 어찌 이몸을……?”

그때까지도 조운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온 판관이 봉곡리 오죽거리에서 만난 김제갑 목사가 말하던 그 김시민이라는 것을.

“그대가 강조운이라는 사람이오?”

관아에 들어간 조운과 첫 대면한 시민이 맨 처음 물은 말이었다. 조운은 급히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어찌 저 같은 사람을……?”

그러자 시민은 품에서 무슨 서찰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건 나의 숙부이신 김제갑 전임 진주목사께서 보내신 서찰이오.”

깜짝 놀라는 조운에게,

“숙부님께 말씀은 많이 들었소.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오.”

“만나 뵙지 못할 줄 알았는데…….”

조운은 목이 메고 눈물부터 솟았다. 시민도 눅진한 음성이었다.

“숙부님께서 꼭 만나서 깊은 연을 맺으라고 당신의 서찰에서 신신당부하시었소.”

“아, 그런 말씀을……?”

조운은 새삼 운명의 질긴 끈을 깨닫고 전율했다. 위기에 빠지게 될 나라를 건질 귀인이 바로 저분이로구나.

“잠시만 나가들 있거라.”

시민이 주위를 물리쳤다. 부하 관리들은 의아한 표정들로 거기를 나갔다. 단 둘만 남게 되자 시민이 심각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일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 이야기부터 나누게 될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어쩔 수 없이 조운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직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예상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테지. 그게 어디 하루 이틀 만에 이룰 수 있는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일이겠소? 어쩌면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야 될 일인지도 모르는데…….”

조운의 마음이 너덜너덜 찢기고 팍 망가진 비차만큼이나 참담했다. 그렇게 공력을 들여 만든 제작물인데도 너무나 허무하고 비정했다. 차라리 살아 있는 새를 만들어내는 게 더 쉬울 성싶었다. 조운이 자기로 인해 죽어간 무수한 비차의 시체들을 보면서 토해낸 피는 가마못을 채우고도 남을지 몰랐다.

“아무튼 놀라운 일이오. 본관은 숙부님에게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르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봅시다.”

시민의 말은 조운을 더한층 움츠리게 했다. 아직도 날기는커녕 굴러가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의 다리를 끊어내어 비차 바퀴로 쓰고, 그의 팔을 떼 내어 비차 날개로 달고, 그의 목을 잘라내어 비차 머리로 꽂을 각오도 돼 있었다.

“특히 본관하고 같은 한날한시에 태어났다고 하니 더 반갑소.”

시민은 처음 보는 조운에게서 친 동기 이상의 어떤 끈끈한 정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건 조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조선 전체가 거의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이웃나라 일본의 은밀하고 미세한 움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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