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189>
오늘의 저편<189>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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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로 낮잠을 다??.”

 잠자는 모습을 상기시키며 흉을 좀 보려다가 그냥 말꼬리를 흐리며 보시기로 눈을 돌렸다.

 “그건 또 뭐니?”

 “바르는 약이에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장모님께서 애를 많이 쓰시는데 빨리 나아야지.”

 약 보시기를 받아든 진석은 거울을 세웠다.

 “방금 전에 형식이가 가져온 연고 발랐잖아요?”

 무심결에 그렇게 말해 버렸다. 명색이 인텔리인 그가 약이라면 무조건 확 달라 들고 있어서 딴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뭐 어떠냐? 하늘을 감동시키려면 이 약 저 약 다 발라봐야지.”

 벌써 손끝으로 약을 찍어 살살 펴 바르고 있었다.

 “당신 보니까 낮잠 자던 하늘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 다 치겠어요.”

 앉은자리에서 농담까지 한 민숙은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하며 몸을 돌렸다. 바르는 약을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진석은 멀어져가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 앞뒤 없이 꿈 생각이 난 것이었다. 평소에 꿈을 잘 꾸는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꿈의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그의 눈앞에서 돋아났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민숙은 목을 뒤로 돌렸다.

 “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장모님께 여쭤봐 줘.” 

 상기된 얼굴로 벌레가 몸속에서 기어 나왔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정말이세요?”

 민숙의 눈이 크게 둥글려졌다. 그녀는 들은 적이 있었다. 고질병을 앓던 사람이 토하거나 벌레 같은 것이 몸속에서 나오는 꿈을 꾸고는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 드러난 동공으로 진석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에도 같은 희망이 간절하게 엉겨 있었다.

 단숨에 친정으로 달려간 민숙은 숨을 헐떡이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예 중공군이 예까지 쳐들어 왔냐?”

 헤어진 버선을 꿰매던 화성댁은 놀란 눈으로 방문을 열었다.

 “아, 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민숙은 방안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이년아, 아니면 뭔데 이 방정이냐 방정이!”

 아랫목을 딸에게 조금 내주며 곱게 흘겼다.

 “김 서방 진짜로 나을 건가 봐요.”

 어머니 옆에 찰싹 붙어 앉으며 서두를 펼쳤다.   

 “그럼 누구 사윈데 진짜로 나아야지. 근데 무슨 일이냐?”

 또 딸을 가볍게 흘겼다.

 “있잖아요? 구더기가??.”

 바야흐로 본론을 조금 열어 보이던 민숙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뭐, 겨울에 구더기는 무슨 구더기?”

 여름날의 뒷간부터 떠올린 화성댁은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얼굴로 핀잔을 주었다.

 “아니에요. 잠이 막 들려고 하는 데 온몸이 근질근질하더니??.”

 “그럼 김 서방이 꿈을 꾼 거냐?”

 화성댁은 딸의 말을 급히 잘랐다. 민숙에게 꽂혀 버린 동공은 노랗게 질린 채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민숙은 목을 조금 끄덕이며 진석에게 들은 꿈 이야기를 자세히 엮었다.

 듣고 있던 화성댁의 눈에선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길몽이라고 주문을 외듯 자꾸 중얼거렸다. 이어 딸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부정 탈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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