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뉴스 <36>
오늘의 뉴스 <36>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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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음을 느낀 민숙은 울음을 뚝 그쳤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등잔대의 밑둥치를 받치고 있는 둥글넓적한 나무였다.

 민숙의 두 눈에 희망이 급히 충전되었다. 희망이 광기로 번쩍이는 순간 그녀는 등잔을 인 돌맞이 아기 팔목만한 외다리 등잔대를 움켜잡았다. 작은 사기그릇 부딪치는 소릴 내며 등잔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석유냄새가 방안에   확 풍겼다. 

 “에잇!”

 민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형식의 머리를 쳤다. 질량이 느껴지는 ‘탁’ 소리가 짧게 울렸다.

 “아악!”

 형식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민숙의 몸 위에 쓰러졌다.

 민숙은 너무 무거운 형식을 옆으로 밀어내곤 무조건 밖으로 달아났다.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걸음에 마당으로 내려서고 나서는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저것들이 일은 잘 치렀겠지? 진석아, 이 어밀 용서해라. 가문의 형벌을 너의 대에서 끝내고 싶단 변명은 굳이 하지 않으마.’

 여주댁은 귀에서 손을 뗐다. 눈도 떴다.

 이런 때를 두고 갈 데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갈 곳이 없어진 민숙은 여주댁과 동숙의 얼굴이 번갈아 눈앞에서 돋아나곤 하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담장 가까이로 발걸음을 옮겨간 민숙은 지친 몸을 담에 기대다 흠칫 놀랐다. 저고리의 앞자락이 젖어 있었던 것이다.

 ‘……석유겠지?’

 민숙은 등잔이 넘어지면서 냈던 그 소리를 일부러 기억해냈다. 그러면서 옷자락을 슬그머니 코앞으로 당겼다.

 ‘서, 설마 지독하게 나쁜 일이…….’

 낯선 끈적거림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민숙은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냐. 아니라고.’

 민숙은 본능적으로 확신하면서도 무심결에 진저리를 쳤다.

 ‘피다 피! 이건 피가 틀림없어.’

 민숙은 ‘아, 살았다’ 하는 얼굴로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이어 형식을 물었을 때 입에 느껴지던 액체의 느낌도 기억해냈다. 

 ‘형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민숙은 앞뒤 없이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듯 맥없이 주저앉았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을까? 설마 아주 잘못된 건 아니겠지?’

 온갖 불길한 생각에 휩싸인 민숙은 대문간으로 목을 돌렸다.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었다. 방으로는 눈도 돌리고 싶지 않았다. 방안의 장면을 상상만 해도 무조건 겁이 나고 가슴이 옥죄여 왔다.

 ‘어머닌 또 마루 끝에 앉아 이 못난 딸 생각에 눈물 흘리고 계시진 않을까? 가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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