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56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6.14(금)6.13(목)6.12(수)6.11(화)6.10(월)6.7(금)6.6(목)6.5(수) 오늘의 저편 <7> 화성댁과 여주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머리칼을 움켜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서로를 향하여 무척 미안했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선 옆모습들을 힐긋거리며 옷의 흙을 툭툭 털었다.“괜찮아요?”화성댁이 그냥 가긴 아무래도 미안했는지 발걸음을 대문께로 당겨가면서 헝클어진 여주댁의 머리를 곁눈질했다. “괜찮아요. 민숙 어머니는??요?”남몰래 쌓인 한이 한 움큼의 눈물로 왈칵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여주댁은 목멘 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겠지요. 그 날이 오면 오늘 일을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9 오늘의 저편 <6> 혀를 깨물고 죽을 수는 있어도 아이들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입언저리를 파르르 떨며 가슴을 정확하게 두 번 탁탁 쳤다. 자전거가 서는 기척을 등 뒤로 느낀 화성댁도 이젠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대로 순사가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잡히고 말 것만 같았다. 둘을 지켜달라고 빌어 볼 때라곤 하늘밖에 없었는데 지금 당장 하늘은 너무 먼 데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만 같은 얼굴로 서 있던 화성댁은 투박한 목청으로, “이년아, 내 딸 내놔.”라고 하며 여주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8 오늘의 저편 <5> 여주댁은 사방으로 눈을 튀긴 후 양손으로 완강하게 거머잡고 있던 대문의 입을 조금 더 벌렸다. 대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간 민숙은 뒤뜰로 괭이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진석의 방은 안채와 마주 보이는 아래채에 있었다. 전쟁에서 지고 있던 왜놈들이 이 땅의 처녀총각들을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을 쓰는 바람에 순사가 들이닥칠 때 마다 뒷산으로 달아나기 좋은 뒤채로 방을 옮겼다. 막 뒷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던 민숙은 대문 흔드는 소리와 함께, “여주댁 안에 있어요?”라고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7 오늘의 저편 <4> 하루에 수십 번씩 화성댁은 민숙을 빨리 시집보내야겠다고 벼르며 입술을 깨물곤 했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매파한테 말을 넣어둔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쪽 형편도 내놓을 것이 없는 터여서 입에 살살 녹는 그런 떡을 물색해 달라고 부탁하진 않았다. 정신 제대로 박혀 있고 사대육신 멀쩡한 총각이면 되었다. ‘그냥 진석에게 시집보내 버릴까’ 화성댁은 머릿속이 끈적끈적해 옴을 느꼈다. 버릇처럼 머리를 짧게 흔들었다. 진석의 누이는 시집 간지 삼년 만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지금 경성에서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7 오늘의 저편 <3> 수원에서 경성방향으로 가면서 지지대 고개가 있었다. 고개 왼쪽에는 뒷산과 남산이 어깨와 이마를 비비며 마을사람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여남은 집이 모여 있는 학동마을은 뒷산자락에 얌전하게 안겨 있었다. 학동에선 목을 많이 돌리지 않아도 산들이 다투어 눈에 걸려들었다. 앞쪽으론 들판이 있었고 그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젖줄을 내놓고 있었다. 학동 어귀엔 이백 살이 넘었다고 하는 정자나무가 들어오고 나가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미, 민숙아, 왜놈 온다!” 화성댁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며 딸의 방을 향하여 숨 가쁘게 외쳤다.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6 오늘의 저편 <2> 처음부터 용진은 어머니가 뼈저리도록 아픈 외로움의 종착역이 되어 줄 것이라고잔뜩 기대하지 않았다. 믿음은 있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찾아가는 아들을 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는. 언제나 그랬듯 용진의 어머니는 아들을 깊이 품어주지도 않으면서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암벽의 발치 옆으로 드러누운 큼직한 항아리만한 둥글번번한 바위가 있었다. 용진은 그 위로 올라서며 아래로 눈길을 그었다. 뒷산 자락에 안겨 있을 학동마을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학동 쪽을 보며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했다. 육이오 때 인민군에게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13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71372373374375376377378379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