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00년을 내다 본 카프카의 경고
[기고]100년을 내다 본 카프카의 경고
  • 경남일보
  • 승인 2024.07.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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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정 경남일보경제연구소장
최효정 경남일보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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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태어나 여름에 숨을 거둔 작가, 올해는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타계 100주기가 된 해이다. 그의 역작 중 중편소설 ‘변신’은 ‘하루아침에 해충(害蟲)으로 변한 남자의 이야기’로 1912년에 집필되었다. 그런데 혹시 카프카가 타임슬립(Timeslip)이라도 경험한 것일까? 마치 2024년의 한국 사회를 미리 본 뒤 소설을 구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리 주변에서 갑자기 ‘해충(害蟲)’으로 변한 사람들이 급증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한남충’이란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소셜 네트워크 세계(SNS)에서 한국 남자를 비꼬는 말이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맘충’, 노인들은 ‘틀딱충’, 중고등학생은 ‘급식충’으로 불리운다. 어떤 대상이든 접미어 ‘-충(蟲)’만 붙이면 한순간에 사람이 벌레처럼 인식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혐오의 표현들을 특정 성별이나 계층에만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집단, 행동양식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어디에나 붙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충’이라 부르며 지역을 깎아내리고, ‘진지충’이라 붙이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행동양식마저 혐오의 타깃이 된다. 여기서 카프카의 이름을 딴 용어인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기이한 현상, 부조리함 속에서 붙이는 문학적 수사인데, 누구라도 어느 날 갑자기 ‘-충’으로 불리게 되면 딱 이런 심경이 아니겠는가, “카프카에스크!”

소설 ‘변신’으로 돌아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가 느꼈을 회의(懷疑)를 잠깐 생각해 보자. 주인공 그레고르는 하루도 쉬지 않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인물이었다. 그가 벌레로 변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함께 슬퍼했다. 그레고르는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게 되었고, 반면 가족들의 언어는 모두 그에게 빠짐없이 들려왔다. 처음엔 그의 여동생이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방 청소도 해주었지만 점점 부담을 느낀다. 부모 역시 점점 그레고르를 무시하거나 학대한다. 가족들의 무시와 혐오로 정말 벌레 취급을 받게 된 그레고르는 점점 모멸감과 상실감을 느꼈고 소외되었다.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고통스럽고 쓸쓸하게 죽어간 그레고르. 소설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는 혐오의 결말은 고통과 죽음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 짙어진 ‘-충’을 연상케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온라인 혐오 표현 인식조사’를 실시하며 혐오표현에 관한 심각성을 공론화했고, 2023년 ‘혐오 표현으로 부터 안전할 권리’ 등의 대책 마련과 논의를 펼쳤다. 올해는 ‘혐오 표현 예방을 위한 정부 역할 모색’이란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했다. 정부에서는 관련 법령˙제도˙정책의 개선을 위한 ‘혐오 차별대응 기획단’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온라인 매체에는 혐오표현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부족이 빚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때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갈망해 왔다.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얼굴도 가리고 이름도 가렸다. 그 결과 이만큼 투명한 사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혐오를 주고 받는 공간에서는 시끄럽고 공허한 소음만 있을 뿐 누구의 목소리도 들을려고 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대상을 향해 막말이나 막무가내식 행위를 멈춰야 한다. 이 행위는 악의 씨앗이 되어 끝도 없이 번져나갈 것이기에 카프카의 ‘변신’처럼 그 결과는 고통일 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멈추자. 그리고 ‘네티켓(netiquette)’을 실천하자. 인터넷 세상에서의 에티켓,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의 초석이자 긍정사회(positive society)로 가는 길 아니겠나, 여름밤 매미가 서럽게 울어댄다. 혹 100년 뒤,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본 카프카가 매미로 ‘변신’ 해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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