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경일칼럼]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 경남일보
  • 승인 2024.07.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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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지난주 교수법 연수가 있어 1박 2일간 서울 상암동에 다녀왔다. 연수 종료 후 기차 시간까지 한나절 짬이 생겨, 근처 양화진, 양화대교를 거쳐 선유도 공원까지 둘러보고 왔다. 걷기에는 다소 버거운 코스였지만, 폭우 예보로 잔뜩 웅크린 날씨 덕분에 빗방울과 햇살과 선선한 강바람을 번갈아 맞으며 도보로 대교를 건너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강을 걸어서, 그것도 양화대교를 건넌다는 것. 서울 사람이 보기에 별일 아닐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한강의 하고많은―현재 32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다리 중에서 양화대교는 2014년 자이언티라는 가수가 발표한 동명의 노래 덕분에 더 유별하게 느껴지는 다리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 ‘양화대교’는,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고 대답한다는 내용, 그리고 어느새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 아들에게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 양화대교”라고 똑같이 대답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 똑같이 양화대교를 오가게 된 아들이,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잔잔하게 흥얼거리는 이 노래에서, 필자는 대한민국 소시민의 삶, 그 속에 담긴 체념과 희망, 위로를 들었다. 실제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많은 젊은이가 이 노래를 듣고는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울었다”라는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읽기도 했다. 그저 아프지만 말고 행복하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자고, 무슨 거창한 희망을 함께 좇아 가자거나 목숨 걸고 행복해지자는 선언이 아니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흔히들 나누는 인사말로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지점에서 문법 운운하면 재미없게 들리겠지만, 사실 ‘행복하자’라는 말은 비문(非文)이다. 우리말 문법에서 ‘행복하다, 건강하다’ 같은 형용사는 청유형과 명령형 어미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쓰고 싶다면 ‘행복해지자, 건강해지자’처럼 바꿔 써야 한다.

그러나, 자이언티가 내 곁에 앉아서 조용히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노래하면, 이 정도는 허용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그저 “아프지만 말고 행복해지자”라고 노래하는데 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서울 연수와 비슷한 날짜에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영화 ‘탈주’를 보러 갔다가 영화 OST에 담긴 ‘양화대교’를 다시 듣게 됐다. ‘탈주’는 휴전선 부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규남(이제훈 분)이 남한으로의 탈주를 시도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캄캄한 밤하늘, 쏟아지는 별빛, 추격자의 조준경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주인공의 강렬한 눈빛, 빗발치는 총탄을 뒤로하고 생사를 넘나들며 내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신기하게도 우리 현실 속의 여러 규남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위험천만한 탈출과 질주 끝에 남한으로 탈주하는 규남이의 바람은 단 하나. “여기선 실패조차 할 수 없으니,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 그러므로 무슨 거창한 성공에의 욕망이 아니라, 실패라도 하면서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떠난다는, 과장하자면 ‘양화대교’의 뮤직비디오 같은 작품이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걸까,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는 없을까, 괴로워하며 그냥저냥 숨만 쉬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로 탈주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양화대교 위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소시민답게 소소한 희망을 노래한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말이다. 감히 인용하건대, 그런 우리를 보고 붓다도 말한다. “살아가라! 그저 그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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