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상품 포장의 기술
[경일칼럼]상품 포장의 기술
  • 경남일보
  • 승인 2024.07.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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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헌 변호사
이송헌 변호사


얼마 전 법원은 가짜 명품을 진짜라고 속여 판매한 사기꾼에게 실형을 선고한 적 있습니다. 중고 인터넷 거래였는데, 사기꾼은 실제로는 명품 가방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치 명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 피해자로부터 중고 명품가방 값을 받고 ‘가짜’를 건넨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중고일지라도 명품을 가지려고 할까요. 아마 외양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명품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가난하지 않고 뭔가 있어 보인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명품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은 첫 인상에서 작은 ‘신뢰’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가난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도 있을 듯합니다. 외양을 가꾸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지요.

저도 출근할 때 외모를 가다듬습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지요. 제가 아주 캐주얼한 복장으로 슬리퍼를 끌며 출근해 이 뜨거운 여름에 선풍기만 탈탈 틀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의뢰인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저는 멋지게 외양을 가다듬고 제법 근사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앉아, 에어콘을 작동시켜 이 뜨거운 여름 더위에 지친 의뢰인들이 사무실에 들어오면 ‘아, 시원하다’ 싶은 생각이 들도록 쾌적하게 해 두고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저의 인격적인 내면이나 문제 해결 능력 이외에도 저의 외양과 외부 여건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결정권자인 판사나 검사, 경찰은 외양에 휘둘리지 않을까요. 그들은 외양이 아니라 내면이나 본질만을 읽고, 그것을 단번에 꿰뚫어볼 수 있을까요.

인터넷을 통해 정의의 여신상을 검색해 보면, 양쪽 눈을 천으로 가리고 한 손에는 천칭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눈을 가린 것은 자신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외양이나, 그 사람과의 인연 등 외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천칭 저울에 따른 정확한 판단을 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면 정의의 여신은 상대방의 외양에 현혹되거나, 혹은 아는 사람이 심판을 받으러 왔을 때 정에, 인연에 흔들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 경험상 사람은 이성과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잘 짜여진 각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감동받기도 하며, 분노하기도 하고 심지어 펑펑 울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리고 있지도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인연에 연연하고, 외양에 휘둘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결정권자들은 정의의 여신과는 달리 단 한 명도 눈을 가리고 있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외양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라,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사람은 외양에 휘둘리고,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그 극복은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외양과 감정에 휘둘립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사건들을 진행해보면, 결정권자들도 선입견과 편견에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공무원으로서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가진 자신들의 한계를 직업의식과 전문가로서의 프로 정신으로 극복해 내려 합니다. 그들은 항상 그런 ‘과정 속’에 있습니다. 어떠한 경찰도, 어떠한 검찰도, 어떠한 판사도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다가가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많은 의뢰인들이 자신이 받은 처분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합니다. 정말 ‘통쾌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사람의 의견이란 항상 반대의견이 있기 마련이고, 항상 경쟁자, 라이벌이 있기 마련이며, 결정권자는 그 상대방의 의견까지 듣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결정권자에게 다가갈 때 우리는 일단 예를 갖추고 외양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외양을 무시하지 마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자기 자신을 약간은 포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쇠고기가 맛있다고 해 쇠고기 덩어리를 대강 크게 잘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봉지에 담아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보다는 예쁘게 잘 썰어서 멋지게 디자인 된 상자에 줄을 맞춰 담아 드리는 것이 더 나은 것과 같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당신의 실존과 내면을 접하기 전에 결정권자들은 항상 당신의 외양을 먼저 접하고, 외양을 먼저 평가한다는 점을 알아두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값비싼 명품일수록 그 상품 포장의 기술은 더 뛰어납니다. 더욱 놀랍게도 가끔 상품 포장의 기술은 그 상품의 본질을 뛰어넘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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