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조선시대 방(榜)을 떠올리며
[객원칼럼]조선시대 방(榜)을 떠올리며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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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변리사·건축기술사·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고영회 변리사·건축기술사·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을 볼 때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 장면, 조정이 백성에게 알리는 알림글(방, 榜)을 보면 죄다 한자로 적혀있다. 당시 한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때였는데, 백성을 대상으로 제도를 알리는 글을 백성이 알 수 없는 글로 적었으니 참 한심한 일이었다. 백성이 제도 내용을 알 수 없는데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도 많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파트 주차장 입구(OUT-PARKING-IN), 2층(2F), 영업합니다(OPEN), 닫았습니다(CLOSE), 고맙습니다(THANK YOU)’와 같이 우리 말글로 적어도 충분한 것을 굳이 영어로 적는 것은 무슨 생각일까? 열등감에서 나온 행동일까? 마뜩잖다.

중앙과 지방 행정청은 시행하는 정책을 쉽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정책은 주민이 혼란스럽지 않으면서 쉽게 알고,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눈높이를 정책 시행의 대상에 맞추어야 정책 효과가 커진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주시 누리집(홈페이지)을 살펴보자. 대개 홈페이지라 하는데 진주시는 ‘누리집’이라 하였다. 아, 진주는 다르다! 느낌이 좋다. 조금 더 둘러보자. ‘진주톡포유, 백투더1592, Today 참 진주, 미디어 파사드 인터랙션 체험…’ 더 자세히 들어가면 진주시 누리집에서도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 나타난다. 저런 말을 쓰면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많다. 필자도 일부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정책을 널리 알리자는 누리집 목적에 맞지 않다.

또 누리집에서 검색창 시작 글자가 한글이 아니고 영어로 설정된 것 같다. 시민이 검색하려는데, 글자를 치니 영자가 입력되고, 치다가 중간에 지우고 다시 치게 한다면 불편함과 비능률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말글을 쓰는 우리나라에서 이럴 일이 아니다. 진주시 누리집은 대체로 외국어 외래어를 적게 쓰지만, 시민이 더 쉽게 분명하게 알 수 있게 정책 이름, 내용을 더 가다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글자가 한글이고, 우리 국민은 우리말을 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우리말 우리글을 씀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굳이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도 없는 우리 말글 쓰자고 열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말글을 쓰자는데 국수주의자냐, 영어가 세계 언어인데 그걸 배우지 말자는 것이냐고 역정을 내는 사람을 본다. 외국어는 필요한 사람이 배우면 될 일이다.

우리나라가 50~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발전한 데에는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외국어로 된 제조 기술을 쉽게 이해하는 우리글로 옮겨 기술을 익히게 하고, 익힌 기술로 제품을 생산했기에 짧은 시간에 선진국 제품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외국어로 생산기술을 익혀야 했다면 선진국 따라잡기가 가능했겠는가.

앞으로는 우리다움이다. 우리다움으로 세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다움은 우리 정체성이다. 우리 기술, 우리 문화, 우리 행정이 우리다울 때 세계에서 부러워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세계 최고다. 우리다움의 기본은 우리말 우리글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탕으로 만든 기술, 문화, 제도가 앞으로 세계를 누비게 해야 한다.

온 세계 젊은이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려고 애를 쓰는 시대에, 정작 우리는 외국어를 못 써 안달하는 모습이 참 거북하다.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는 우리말 우리글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우뚝 서게 하는 바탕임을 새기자. 우리말 우리글이 우리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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