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사랑도 평등한 관계가 기반이 돼야 한다
[여성칼럼]사랑도 평등한 관계가 기반이 돼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4.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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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최근 경남 거제시에서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의 폭력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이별 이후 스토킹을 일삼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찾아와 자고 있는 피해자를 무참히 폭행했다. 피해자가 사망했음에도 검찰은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았다. 사망 이유가 명확히 그의 폭력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에 지난달 22일, 경남지역의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피해 여성은 교제기간 동안 가해자를 데이트폭력으로 경찰에 12번 가량 신고했다. 그녀는 교제기간동안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고, 상대는 이별을 수용하지 않고, 폭력으로 응답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매년 발표하는 분노의 게이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최소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죽거나 죽을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빈번하게 데이트폭력의 결말이 스토킹과 살인으로 돌아오는 두려움을 학습하고 있다.

피해자의 수차례 신고에도 제대로 된 처리나 보호조치도 없었던 것과 관련하여 경찰은 ‘데이트폭력 관련 법의 부재’,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일상과 개인정보를 잘 알고 있어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폭력 피해를 드러내 해결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역시 연락처 변경, 거주지 이동 등 이별 이후 가해자와의 분리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몸과 마음의 경계가 있다. 상대의 경계를 넘어설 때에는 동의를 구해야 하고, 동의는 구체적이어야 하며 양방향이어야 한다. 친밀한 연애관계에서도 서로의 경계는 존중돼야 하며, 매사에 동의를 구하고, 수용과 거절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한다고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헌신하며 사랑을 유지하는 것을 익혀가야 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나와 상대의 욕구와 권리를 존중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 거절당했다고 분노하고 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변했다면 슬프지만 이별을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연애는 굉장히 사적인 일이지만 그로 인한 폭력과 살해가 발생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연애와 이별을 할 때 주로 여성들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차별을 기반한 젠더폭력임을 반증한다.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이 아니라 기울어진 관계에서 사람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폭력이다. 원치 않는 연락, 기다림 등으로 인한 불안, 공포심을 주는 괴롭힘은 스토킹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데이트폭력과 스토킹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해결 의지가 있다면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 국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신변경호, 스마트워치 지급, 가해자에게 경고, 보호시설 연계, 임시숙소 제공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게 되어 있다. 수사기관은 현행범인 가해자를 체포해 피해자와 분리 후 수사할 수 있다. 이미 만들어 놓은 피해자 보호방안이 실현돼야 한다.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사법기관의 인식변화가 절실하다.

사랑도 평등한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성차별한 사회에서 여성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의 친밀한 관계를 평등하게 유지하는지 돌아보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제도와 인식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노력을 부단히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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