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즐거운 공부 '독서'
[시민기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즐거운 공부 '독서'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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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문산읍에서 자그마한 동네 책방 겸 카페인 ‘보틀북스’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문학적 공간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파는 공간인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을 서점주인, 책방사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서점보다는 ‘책방’이, 대표나 사장보다는 ‘지기’라는 단어가 가장 좋다.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방,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한가득한 미지의 세계, 일명 책들의 방 ‘, 책방’을 지키고 있는 ‘지기’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명함에도 ‘책방지기’라고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적어두었다.

책은 무엇일까?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일 뿐일까? 일정한 목적이나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놓은 매체에 불과할까? 내게도 책을 관념적으로만 알고 이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책이지, 그 무엇이든 책 그 이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내게 책은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중 하나다.

문득 고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학교 앞에서는 온갖 종교단체들이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던 때가 있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 등 개인정보 몇 개만 적으면 책을 준단다. ‘책’이라는 단어 하나에 혹해서는 무슨 책인지 묻지도 않고 나는 내 개인정보를 냉큼 팔아먹었다. 순찰을 돌던 주임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며 내 개인정보가 적혀있던 종이를 무사히 사수했지만, 나는 책을 뺏기지 않아서 기뻐했다.

그때의 나는 책을 소유하는 것, 그 행위 자체에 기뻐했던 것 같다. 책을 가지고 있다고 저절로 지식이 습득되는 것도 아니건만, “책은 숙성시켜 읽어야 더 맛있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책장의 부피를 키워나갔다. 소유하고 있으니 눈길이 갔고, 눈길이 가니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그러다 보니 깨달았다. 사람이 아닌, 사물 그 자체에 애정을 가진 게 아마 처음인 것 같다고.

우리는 늘 소비를 한다. 늘 새로운 물건을 사고, 쌓고, 버린다. 하지만 그중 정말로 애정을 가진 물건이 얼마나 될까? 기능이 망가지기 전에, 디자인이 쇠퇴되어 버린다. 켜켜이 짐처럼 쌓여, 존재가 망각된 채 버려진다.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잃어버려지고, 또 새로운 사물로 그 빈자리가 채워진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책은 달랐다. 책에 붙여두었던 무수한 인덱스들 속에 나의 변화를 읽는다.

빛바랜 책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물씬 느끼게 되고,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 속에서 설레는 내일을 기다리게 된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무지의 깊이를 더 체감하게 해 주었고, 그렇기에 더 공부하게 만들었다.

‘공부란 늘 굴욕적인 것이다. 자신의 무식을 늘 객관화하며 나아가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을 읽을때마다 나의 무지를 직면하게 되고, 무지라는 치욕을 덮기 위해 또다른 책을 펼치게 된다. 타인을 위해, 특정한 학교나 회사나 조직을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를 위한, 진심으로 나만을 위한 공부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택했다. 즐겁고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자 취미이자, 나의 오롯한 것으로서.

채도운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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