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우리들의 진주문고
[경일춘추]우리들의 진주문고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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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영 작가
유승영 작가


오랜만의 책 냄새다. 오늘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는 어떤 작가가 왔을까 기웃거려본다. 사람들이 책을 나르고 책을 읽고 책에 묻혀서 각자 여행중이다. 시집코너에서 손에 잡힌 김혜순·황인숙 시인을 골랐다. 시집을 안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책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아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저들끼리 친구가 되고, 캄캄한 밤 귀가해 가방을 툭 던져놓고 벽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으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는, 진주문고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시골의 작은 책방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짐을 풀어놓고 무작정 나섰던 곳이 진주문고다. 대도시에서 내려와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 없는 나를 위로했던 공간. 2층 창가에서 그렇게 한참이나 책을 읽고 읽었던 것 같다.

까치발을 하고 책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를 따라나서면 시장골목 어디쯤에 작은 서점에 갈 수 있었다. 엄마는 시장을 보고 나는 책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장을 다 본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한다. 읽다 만 책을 덮어야 하는 시간이 어찌나 아쉬웠던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지금 나는 진주문고에서 김혜순의 시집을 읽고 있다. 내가 처음 만난 진주문고는 아쉬움 없는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공간이었다. 1986년 ‘책마을’로 시작해서 내가 진주에 자리를 잡을 즈음에 엠비씨네 2호점이 생기고, 북까페 ‘진주커피’가 문을 열었다. 운치 있고 레트로(retro·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한 지금의 진주커피가 참 좋다. 내가 사는 곳에 진주문고 3호점이 생겼지만 이곳 평거본점은 특별한 나의 공간이기에 이곳을 나는 사랑한다. 내가 진주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도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진주문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혜순의 ‘날개 환상통’이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 그 유년의 그 기억처럼 말이다.

새, 잠자리에서 끌려 나온 새가 날아간다/머리채를 묶은 새가 날아간다/아기 손 같은 발을 떨어뜨리고 몸만 간다/영문도 모른 채 퍽퍽 날아간다/내려앉을 때는 머리가 산발이다/새들이 던져진 듯 날아간다/그물 밖에 사는/새들은 불면증이다/매일 밤 이 광경을 숨죽여 보고 있다/충혈된 눈으로 보고 있다/지하 방에는 몸을 동그랗게 만/귀머거리 소녀가 울고 있다/낚싯바늘에 꿰인 미끼처럼 새가 날아간다//김혜순 날개 환상통 중(中) ‘새, 소스라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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