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텃밭사랑
[경일춘추]텃밭사랑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8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유진 수필가
김유진 수필가


보릿고개 굶주린 배 움켜쥐면서 부모는 자식을 공부시키려 도시로 떠나보냈다. 농사 일이 험한 일이라 내 자식만큼은 농사를 안 시킬 작정으로 너도나도 도시로 보냈다. 70년대까지 우리나라 농촌에서 들불처럼 번진 자식사랑의 공식이었다. 부모의 허리춤이 가늘어져도 자식들이 힘든 농사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대부분의 부모는 희생을 각오하며 살아야 했다. 그 시대 부모들은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자식 교육에 헌신했다.

불과 반세기가 지나면서 도시로 떠났던 베이비부머, 이 나라 산업화의 주춧돌이 돼 주었던 그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에 접어들었다. 도시의 다변화로 공업화에 병든 마음을 안고 어디로 돌아갈까 망설이고 있다.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이란 말이 있듯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품이 고향이다. 뒤늦게나마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렇게 흙이 싫어서 떠난 고향, 아니 흙을 싫어하게 만든 부모님으로 도망쳐 도시로 떠났던 세대들이, 호미 하나 달랑 들고 텃밭을 기웃거리는 시대가 왔다. 고향이란 향수를 찾아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중에 나도 그 한복판에 서 있다. 나는 야생화를 좋아해서 꽃을 가꾸어 볼 요량으로 텃밭 가꾸기를 선택했다. 우리 세대는 척박한 세상에 던져져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 은퇴라는 졸업장을 받아 쥐고서야 텃밭이란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흙이란 어머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었고, 햇볕과 비, 바람이 아버지가 돼주어 베이비부머 세대를 손짓해 불러들였다.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삽 하나 메고 겁 없이 덤볐다. 이 밭 저 밭 의욕만 왕성하다. 이른 봄부터 부산한 용기에 나도 한 몫을 한다. 흙냄새는 고향의 어머니 냄새와 많이도 닮아있다.

봄은 희망이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불볕의 여름도 거뜬하게 견딘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산업화 시대 고초를 이겨냈으니 자연에 순응하는 법과 함께 이겨내는 법을 익혔다. 물론 가을 추수는 미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일 년 농사는 망쳐도 내년이 기다리고 있기에, 뭐 그리 낙망할 일은 아니다. 땀 한 방울과 곡식 한 알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매일 농장이란 팻말을 단 텃밭으로 내 맘대로 출근을 한다. 사장도 없고 직원도 없어 노조가 필요 없는, 인생 2막 천국이다. 나는 누구라도 반긴다. 언제라도 찾아오는 객을 맞이할 준비는 돼 있다. 다가올 사월 봄꽃 놀이 온다는 서울 문인의 전화를 받았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