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후쿠시마 원전 사고 우려먹기
[기고]후쿠시마 원전 사고 우려먹기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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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자라가 아닌 줄 알면서도 놀라는 것이 사람이다. 이런 점을 잘 이용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포를 끌어내는 이들이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이용하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심각한 사고였다. 방사성 물질이 대규모로 환경으로 유출됐다. 후쿠시마 제1 발전소 1-4호기는 못 쓰게 돼 재산상의 손실이 컸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주변 지역의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다행인 점도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과 잇따른 쓰나미로 인해 약 2만명이 사망했고 가옥과 논밭이 침수되는 최악의 상황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상황에서도 방사성 물질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원자력 안전 규제 당국과 원전 사업자가 대오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모든 원전을 가동 중지하고 안전성을 재검토했다. 안전성이 확인된 원자력발전소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가동을 허가했다. 후쿠시마 제1 발전소와 제2 발전소의 총 10기의 원전은 폐로가 결정됐다.

참혹한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원전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원전 가동이 전면 중지됐던 기간 동안 일본은 연간 3억엔의 재정 적자를 입었다. 전기요금도 폭등했다. 후쿠시마 지역의 복구를 위한 비용은 원전 전력에 대해 7~8원 정도의 증가 요인이 됐다. 결국 안전 규제를 강화한다면 제2의 후쿠시마 사태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국민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두려워하고 이를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누구나 과학적 자료를 이해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를 더욱 촉발하는 이들도 있다. 후쿠시마의 나쁜 기억을 지나치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언론 등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본다. 여기에 자주 노출되는 사안은 중요하거나 자주 있는 일로 여기게 된다.

또 나쁜 의도가 있는 경우도 있다. 별일 아닌 것을 별일처럼 보도하는 경우이다. 최근 일본 지진과 관련해 한 언론에서는 원전 인근 120개 방사선량 계측기 가운데 15개가 고장나서 방사선 측정을 못하는 상황을 보도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24기 계측기가 고장났다고 이미지를 오버랩시켰다. 제목은 ‘방사선 측정불가, 후쿠시마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붙였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거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 상황도 아니다. 방사선 계측기는 내진 설비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강도의 지진에도 버티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도를 접하는 사람은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도록 작성됐다. 또 어떤 언론은 시카(志賀) 원전 1호기와 2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지진에 흔들려서 약 400리터의 물이 넘친 사건을 보도하면서 ‘수조 부서지면 대참사’라는 제목을 걸었다. 사실 대참사도 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가능성을 보도하며 우려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누출’이 보도됐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 밖으로의 누출이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부지 안에서의 누설이다. 이는 발견됐기 때문에 오염된 토양이 있으면 걷어내고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이런 보도는 전형적인 착시를 유발하는 보도이며 개인적인 반핵 감정을 기사에 담은 것이다. 외국 언론을 베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보도가 야기하는 결과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원자력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국민적 오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약력 (現)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現) 한국원자력학회 제36대 학회장 (前) 제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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