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어떤 고통도 기대가 있으면 참을 수 있다
[경일시론]어떤 고통도 기대가 있으면 참을 수 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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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아무런 부족함도 어떠한 고통도 없는 세상이 있을까? 상상이지만 오감에 쾌락을 안겨주는 가상현실 체험기계가 있다면, 만인의 행복을 의무화하는 국가가 국민에게 평생토록 이 기계에 접속해 있으라고 한다면 그것을 따를 것인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나날을 아무런 부족함 없이 환락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할까?

미국 예일대 폴 블룸 교수는 ‘스위트 스팟(The Sweet Spot)’에서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부족함과 고통이야 말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동기를 주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겪을 수밖에 없는 중노동, 부상, 질병, 핍박, 파산, 싸움, 이별과 그로부터 오는 온갖 심신의 고통, 분노, 좌절, 슬픔 등은 어쨌든 한결같이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맞다. 하지만 이를 나쁜 것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기 전에 이 모든 고통이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 긍정적 효과를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통과 행복감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다닐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호보완 현상이다.

한계효용학파 이후 경제학자들은 효용주의 내지 쾌락주의 틀로 이 모든 행동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 일변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면에 반드시 고통이라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른바‘공짜 점심은 없다’는 금언이 이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 고통은 어디까지나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어야만 한다. 사람들이 미래의 효용을 얻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불가마에 기꺼이 들어가는 이유는 몇 분 뒤에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갇혀서 나올 기약이 없게 되는 끔찍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다수가 겪는 비선택적 고통으로서 몰살, 기근, 전쟁 같은 상황에 이르는 일은 어쨌든 피해야 할 것이다. 대신에 우리가 허용해야 할 것은 선택적 고통(chosen sufferings)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적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도록 이끄는 동기는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서 효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순수한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동기도 개입한다. 부모가 그 힘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식을 키우는 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소방관들의 일, 오지에서 험난을 무릅쓰고 봉사하는 의료진들의 일, 연구자나 예술가가 남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힘겨운 작업에 매진하는 일, 여기에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유토피아가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지루하고 따분한 세계에 불과할 것이다.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도, 삶의 의미도, 지켜야 할 도덕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루함과 따분함은 정신을 새롭게 각성시키지도 삶의 의미를 부각시키지도 못한다.

정치인들은 언제나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사실 그런 세상은 없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은 모피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매트릭스는 애초에 아무런 고통도 없고 행복만으로 가득한 완벽한 인간 세상을 만들려고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이야말로 대재앙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원래 고통을 통해 현실을 정의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다. 완벽한 세상이란 인간의 두뇌가 이따금씩 일으키는 꿈에 불과하다.”고통이 어느정도 있어야 거기에서 혁신과 개선이 나온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소한 사회적 고통을 단번에 없애겠다고 성급한 법 제정, 처벌, 보조금 등으로 막으려다가 더 큰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냥 당사자들이 감내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낫다. 그때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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