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요한 갈퉁 선생님께 부치는 하늘 편지
[경일춘추]요한 갈퉁 선생님께 부치는 하늘 편지
  • 경남일보
  • 승인 2024.03.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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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선생님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2월 17일, 현대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 별세. 향년 93세’ 비록 살아생전 선생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만 학문으로서의 평화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친숙해진 이름이었기에, 저에게는 노르웨이 출신이신 선생님의 타계를 다룬 기사가 마치 지도교수님의 부고 소식처럼 다가오더군요. 제가 현대 평화학에 관한 얕은 수준의 지식이나마 갖추게 된 것은 선생님의 학문적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원에 갓 입학했던 시절, 직접적·물리적 폭력을 제거하는 ‘소극적 평화’ 말고도 구조적·문화적 폭력까지를 제거해야 비로소 달성 가능한 ‘적극적 평화’도 있다는 평화학(Peace Studies)의 가르침이 얼마나 참신하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전쟁부재와 관련된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비참으로부터 사람을 구해낸다는 ‘인간안보’의 개념도 선생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대학원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평화란 오로지 전쟁 반대 개념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질병·차별·무시·혐오로부터 해방돼 개인의 안전과 인간의 존엄을 구현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차원의 평화 개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저는 민족의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소극적·적극적 평화이론의 틀에서 고찰해보거나, 영원한 노동자의 벗 전태일 열사의 삶을 적극적 평화와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재조명하는 논문을 작성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미약한 수준에서나마 앞으로도 저는 평화학의 이론적 자원들을 공부하고, 학문적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유지를 잇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이자 아버지이신 요한 갈퉁 선생님. 아마도 지금쯤이면 평화로운 하늘나라에 잘 도착하셨겠지요? 선생님께 드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올해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합니다. 이에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 분들에게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 달성을 위한 고귀한 상징이 돼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평화로운 공동체가 우리사회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늘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저에게 평화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한국식 표현 보다, 다음의 영어식 표현으로 깊은 애도를 드립니다.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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